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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보수 부시, 진보 노무현 아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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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노무현 10주기 추도식에 초상화를 들고 찾아온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 그는 사실 수준 미달의 화가다. 부시가 들고 온 노 전 대통령 초상화만 봐도 안다. 구도·묘사 모두 꽤나 유치하다. 퇴임 직후인 66세에 처음 붓을 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만난 세계 지도자 30명의 초상화를 선보인 2014년 첫 전시회 때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국익 챙기며 약속 지키는 데 감명 #노, 신념 꺾고 이라크 파병 결정 #후퇴 모르면 국익 최대화 못해

그랬던 부시가 3년 뒤인 2017년 화집을 냈을 때 세평은 완전히 달랐다. ‘용기의 초상들’이란 이 화집은 이라크전 때 크게 다친 퇴역 장병 98명의 초상화와 함께 이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었다. 놀랍게도 이 화집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다. 그림은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인데도 말이다. 성공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부시 특유의 진솔함이 비결이었다. 이들을 명분 없는 이라크전으로 몰아넣은 건 부시 자신이었다. 그런 터라 그가 이들의 애환을 듣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을 게다. 그럼에도 부시는 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났다. 여론이 높게 평가한 대목은 그가 부상자들의 애국심을 미화하는 대신 이들의 아픔을 담담하게 전했다는 점이었다. 부시 특유의 솔직함으로 울림이 더욱 컸던 거다.

이런 부시와 노 전 대통령은 둘 다 솔직한 성격임에도 맞지 않은 조합일 수 있었다. 부시는 보수, 노 전 대통령은 진보였던 탓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얼굴을 붉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대북 금융제재를 놓고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였던 2005년 경주 정상회담 때는 얼마나 분위기가 험악했는지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대사는 “내 외교관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라고 회상할 정도다.

이처럼 가식을 모르는 부시가 왜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찾아온 걸까. 무엇보다 국익을 위해 애쓰면서 약속을 지키는 자세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부시 밑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으로 일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말로만 다 해줄 것처럼 하는 다른 정상들보다 일단 한 약속은 지키는 노 전 대통령을 부시는 더 좋아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라크 파병을 다짐하고도 지키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부시는 이라크 파병 결정이 나자 바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해 “하기 힘든 일을 더 잘해냈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겐 신념을 꺾는, 괴로운 일이었다. 훗날 그는 자서전 『성공과 좌절』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역사의 기록에선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이다.…대통령으로서는 역사의 오류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지지자들로부터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전쟁 승리를 위해 때론 전투에서 물러서는 법도 알았다. 이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부시도 성의를 보였다. 집권 초기 ‘독재자’라고 욕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존칭을 쓴 것도 노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었다. 미국 보수파의 극렬한 반대에도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풀어준 것도 마찬가지였다. BDA 제재 해제는 곧바로 북한이 참여한 6자회담 진전으로 이어졌다.

외교란 이런 거다. 하지만 원칙주의자 문재인 대통령은 물러설 줄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이 그를 두고 “내가 아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표현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빠트린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는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타협을 생각조차 않는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 등에서 심각한 후유증이 드러나도 고칠 기색이 없다. 모든 전투에서 버티다간 ‘국익의 극대화’란 전쟁에서 진다. 문 대통령이 ‘실용주의자 노무현’에게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거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