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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북한 러 인사 "김정은, 모욕당했지만 미사일 대신 미국의 공 기다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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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 개회식에서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정보, 북한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 개회식에서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정보, 북한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큰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노이까지 가서 김 위원장이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안을 제시하려 했는데 (미국이 결렬시켜) 체면을 구겼다는거다. 북한은 미국이 공을 갖고 있다고 보고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 세미나…전직 정보수장·전문가들이 보는 한반도는 지금

게오르기 톨로라야 전 러시아 외무부 아태1국 부국장이 27일 밝힌 하노이회담 이후 평양 분위기다. 그는 지난주 평양을 방문한 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이 주최한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GISㆍGLOBAl INTELLIGENCE SUMMIT)에 참석했다. 톨로라야 전 부국장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고 있으며, 1970~80년대 북한에서 두 차례 근무했다.

사흘간 진행되는 GIS의 개막식 격인 이날 스페셜 세션에서 그는 “하노이(2차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미국을 겨냥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재개하는 등 미국에도 모욕을 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전략적 인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모든 접촉, 연락, 회담을 중단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연속적인 스몰딜을 통해 결과적으론 빅딜을 원하는 것 같다. 절실하게 딜을 원하고 있다”며 “하노이에서 체면을 구겼음에도 미국이 공을 갖고 있다고 보고 그걸 기다리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하노이회담 결렬과 관련해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소장은 “미국은 하노이회담 일주일 전부터 김영철 당 부위원장,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하려 했지만 북한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면서 미국이 하노이에서 북한에 포괄적 비핵화 조치를 꺼내든 배경을 설명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북한의 연락두절에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면서 촘촘하게 비핵화 조치를 준비해간 반면, 북한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직접 영변 핵시설 해체+알파(α)를 제시하면 합의를 이룰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회담전 양측이 수 차례의 실무접촉을 현지에서 가졌지만 평양과 D.C에선 서로 다른 구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날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 스페셜 세션에는 톨로라야, 디트라니 외에 미타니 히데시 전 일본 내각정보관, 장퉈셩 중국 국제전략연구기금회 선임연구원 등 미ㆍ중ㆍ일ㆍ러 전직 정보기관 수장 및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사회를 봤다.

이들은 비핵화 협상에서 거론되는 스몰딜과 빅딜의 개념, 향후 교착국면 타개 방식과 관련해 국가별 인식차를 드러냈다.

톨로라야 전 부국장은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해체를 스몰딜로 여기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미국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와도 얘기했는데 영변은 북한 핵자산 절반까진 아니어도 3분의 1은 된다. 여길 파괴하면 핵폭탄을 만들 수 없고, 제가 확인한 결과 우라늄 농축시설도 파괴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AP]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AP]

하지만 디트라니 전 소장은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CVID가 뭔지는 누구도 모른다”며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개념이 무엇인지 포괄적 로드맵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노이회담 이후 교착 국면 타개 방법과 관련해선 일본과 중국 측이 충돌했다. 미타니 전 내각정보관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가 있다”며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제재에 있어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장퉈성 선임연구원은 “비핵화 조치와 체제보장을 동시에 병행하는 중국의 ‘쌍궤병행’이 현 교착국면을 타개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맞받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 개회식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축사를 통해 정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연합뉴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인텔리전스 서밋 개회식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축사를 통해 정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연합뉴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개회식 축사에서 “하노이 이후 ‘한반도 대화 정세’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비롯한 각국 정보기관들은 냉철하게 현상을 바라보고 ‘미세한 변화의 징후’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GIS는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의 전직 정보 및 외교 고위당국자들을 초청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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