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 대처 물렁한 이 정부,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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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이 국제 상선 공용주파수를 통해 '미사일 탄착지점에 선박 항해를 피하라'고 경고한 것을 정부는 3일 오전 파악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처럼 명백한 발사 정보를 입수하고도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연히 미사일 탄착지점을 지나갈 우리 항공기나 선박에 대해선 항로변경 등 안전조치를 내렸어야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보와 관련된 정보 사안'이니 하는 구차한 변명은 더 이상 하지 말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발생했는지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에도 한가한 대응을 했던 이 정부는 발사 후에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에 "다 알고 있어서 여유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의장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무력시위라고 간주했다. 이런 마당에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별것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 게 이 나라의 안보태세인 것이다.

정부는 '7일 남북 장성급회담 실무접촉을 갖자'고 북한이 3일 제의한 것을 거부했다. 대화를 제의해 놓고 미사일 발사로 뒤통수를 친 후 판을 벌이겠다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장관급회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회담은 예정대로 개최하겠다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북한의 이중 플레이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말고 장관급회담도 취소하라.

정부의 무능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비뚤어진 오만이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은 늑장대응을 비판한 언론을 향해 '국적 없는, 국익 없는 보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대통령이 꼭두새벽에 회의를 소집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했다. 대통령의 책임이 뭔지도 모르는 말이다. 이목이 무서우면 조용하게라도 소집했어야 옳지 않은가. 여당의원들마저 정부의 늑장대응을 질타하고 있는 마당에 반성은커녕 언론에 책임을 돌리니 어린애 같은 짓이다.

이번 미사일 위기에서 당연히 나서야 할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고, 정부의 대응태도도 한심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 이외에 다른 선택도 갖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안보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 뒤늦게 후회해도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다.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국민은 침묵하는 정부에 더 불안을 느낀다. 우리 정부가 무엇인가 애쓰고 있구나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