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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반지하는 한국적 공간, 영·불 단어 없어 자막 애먹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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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제작진이 22일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갈라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가운데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의 뒷줄에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도 보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제작진이 22일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갈라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가운데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의 뒷줄에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도 보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어제 ‘기생충’ 상영 끝나고 영국이며, 이태리, 홍콩 분들이 오셔서. 이게 지금 자국 상황이다, 자국에서 리메이크하면 딱 좋겠다, 그러더군요. 빈부 양극화란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영화를 찍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하는구나,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구나 생각했죠.”  

22일(프랑스 현지시각)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난 봉준호(50) 감독의 말이다. 출국 전 서울서 연 제작보고회에선 “워낙 한국 관객만이 뼛속까지 이해할 디테일이 가득해 외국 분들이 백 프로 이해는 못 할 것 같다”고 했던 그다.

칸영화제서 호평 잇는 '기생충' #현지 별점 타란티노·켄 로치 제쳐 #봉준호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 #해외에서 이만큼 통할 줄 몰랐죠" #송강호 "'기생충'은 봉준호의 진화"

그러나 21일 경쟁부문에서 공개된 영화의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과 IT기업 CEO 박사장(이선균)네 가족이 극과 극으로 뒤얽힌 희비극에 상영 내내 환호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끝나고는 9분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2년 전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넷플릭스 영화 ‘옥자’보다 길었다. 스크린에 크게 비친 주연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의 눈빛이 뭉클하게 벅차올랐다.

현지 데일리 매체선 9곳이 '만점' 극찬

22일(프랑스 현지시간)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현지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22일(프랑스 현지시간)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현지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봉준호의 이 블랙코미디는 현대판 '다운튼 애비'(영국 귀족집안을 그린 TV 시대극) 같은 부조리한 상황이 관객에게 넝쿨처럼 파고들게 만든다”(영국 일간지 ‘가디언’) “웃음, 분노에 이어 흐느낌이 목을 관통한 화살처럼 목구멍에 딱 맺힌다”(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 국적을 넘어 피부로 와 닿았단 호평이 많았다. 프랑스 데일리 매체 ‘르 필름 프랑세즈’에선 15명의 평론가 중 9명이 황금종려가지(만점)를 줬다. 11개를 받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에 이어 가장 많았다.

주연배우 송강호는 이번이 봉 감독과 네 번째 작품이자, 칸영화제 초청은 ‘박쥐’ ‘밀양’ 등에 이어 올해가 다섯 번째. 그는 “프랑스 르몽드지 기자는 오즈(가족드라마로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로 시작하더니 이태리 네오시네마로 갔다가 결국엔 히치콕(스릴러로 유명한 미국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으로 가더라, 그런 표현도 하시고 조금 전 인터뷰한 브라질 기자는 두 가족이 하나의 가족처럼 보였다더라. 영화를 이렇게나 짚어 내다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고 했다.

송강호 "리메이크한다면? 틸다는 이 역할"

22일 칸영화제 포토콜 행사에서 주연배우 이선균, 송강호, 최우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22일 칸영화제 포토콜 행사에서 주연배우 이선균, 송강호, 최우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22일 칸영화제 포토콜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여성 출연진. 왼쪽부터 이정은, 박소담, 조여정, 장혜진이다.  [EPA=연합]

22일 칸영화제 포토콜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여성 출연진. 왼쪽부터 이정은, 박소담, 조여정, 장혜진이다. [EPA=연합]

22일 취재진 틈에서 배우들의 포토콜 행사를 지켜보는 봉준호 감독. [EPA=연합]

22일 취재진 틈에서 배우들의 포토콜 행사를 지켜보는 봉준호 감독. [EPA=연합]

“틸다는 ‘마스터피스’란 말을 한 100번은 한 것 같아요.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송강호는 ‘옥자’의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과 더불어 전날 공식상영에 참석한 틸다 스윈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와 ‘옥자’까지 봉 감독과 두 편을 함께했다. “봉 감독과도 그런 얘기 했었거든요. 이 영화를 틸다가 정말 좋아할 것 같다고. 늘 독창적인 작업을 해왔으니까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면? 틸다는 당연히 이정은씨가 연기한 캐릭터죠. 이유는 영화 보시면 압니다.(웃음).”

"반지하는 한국적 공간, 영어·불어 단어 없어"

영화 '기생충'에서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좁은 반지하집에서 피자 상자 빨리 접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좁은 반지하집에서 피자 상자 빨리 접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앞서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의 수평적 기차 공간과 대비되는 이번 영화의 수직 공간 속 한국적 뉘앙스도 설명했다. “영화의 90%가 집안에서 벌어지고 60%는 박사장네 부잣집에서 찍었다. 수직적으로 나뉜 공간들이 계단으로 연결돼 저희끼린 ‘계단 시네마’라고도 했다. 계단장면으로 빼놓을 수 없는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충녀’를 보며 기운도 받았다”면서 “전세계 영화사에서 수직적 공간에 계층을 녹여낸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 우리 영화엔 한국만 있는 반지하 공간(기택네 집)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 반지하집 창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 반지하집 창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또 “이번 영화제 상영을 위해 불어‧영어 자막을 만드는데 반지하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더라”면서 “분명히 지하인데 왠지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영화는 그곳에 가느다란 햇살이 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지하는 햇살이 든다. 하지만 잘못하면 완전히 지하로 갈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서구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부분”이라 강조했다.

봉준호 "저보단 남우주연상" 송강호 "저 양반이 쑥스러워서…"

봉준호 감독이 22일 제72회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이 22일 제72회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저도 베를린‧선댄스 같은 해외영화제에서 심사해봤지만, 그때 경험한 느낌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후의 30분에 뒤바뀌기도 한다.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면서 “상을 못 받아도 있던 재미나 가치가 없어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저보단 송강호 선배님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강력히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송강호는 “저 양반이 쑥스러워서 저런다”며 웃었다.“저는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진화라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면서 “봉 감독의 데뷔작 ‘살인의 추억’에선 리얼리즘 성취가 있다면 이젠 철학적 깊이까지 갔다. 봉준호의 진화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90년대 후반부터 이창동‧박찬욱‧홍상수 등 한국영화 주역들이 이뤄낸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한 단계 높은 클래스로 올라섰다. 작가로서의 봉 감독의 과감성, 자신감, 사회를 관통하는 정확한 시선이 이번엔 놀라울 만큼 더 많이 느껴졌다”고 했다.

22일 한국 취재진을 만난 송강호는 "'기생충'은 봉준호의 진화고, 한국영화의 진화"라 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2일 한국 취재진을 만난 송강호는 "'기생충'은 봉준호의 진화고, 한국영화의 진화"라 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번이 봉 감독과 첫 영화인 이선균은 “‘기생충’은 되게 봉 감독님 같은 영화”라면서 “어떻게 보면 꾸밈없는 것 같은데 세련됐고, 여러 양면성의 캐릭터가 어우러져 복합적이고 멋져 보이는 게 감독님과 닮았다. 대본 자체에 디테일한 설계가 다 돼 있어서 영화를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찍으시더라. 유쾌하고 예리한 분”이라 했다.

봉준호 "칸영화제 공식 상영 실수 아쉬워" 

기택네 남매 모습. 배우 박소담과 최우식이 현실 남매 같은 연기를 펼쳤다. 최우식에 따르면 봉 감독이 이들의 닮은 외모도 캐스팅할 때 염두에 뒀다고.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택네 남매 모습. 배우 박소담과 최우식이 현실 남매 같은 연기를 펼쳤다. 최우식에 따르면 봉 감독이 이들의 닮은 외모도 캐스팅할 때 염두에 뒀다고.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편, 봉 감독은 칸영화제 공식상영에서의 아쉬움도 털어놨다. “칸에서 흔히 늘 하는 기립박수이지만, 최우식씨 엔딩 곡을 함께 들려드리려 했거든요. 근데 어제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랑 같이 불이 일찍 켜지면서 사운드가 꺼져버렸어요.” ‘옥자’에 이어 그와 함께한 최우식은 극 중 기택의 큰아들 기우를 연기했다. 박사장네 고액과외 면접을 가게 되며 두 집안을 잇는 계기이자, 기택 못지않게 내면의 변화를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가 직접 노래한 엔딩곡 ‘소주 한 잔’은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 봉 감독이 작사했다. 봉 감독이 노래 가사를 쓴 처음이다. “이미 영화 텍스트 바깥에 있는 가사지만 곡 분위기에 묘한 느낌이 있거든요.”

‘기생충’은 국내 극장가에 오는 30일 개봉한다. 영화의 여운을 더할 이 곡을 곧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봉 감독은 스포일러에도 전에 없이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기자분들한테 부탁 편지를 쓰면서 유난 떠는 것 아닐까도 싶었지만, 영화가 충격의 대반전은 아니어도 굽이굽이 관객을 확확 견인하는, 멱살 잡아끄는 힘이 있거든요. 모르고 봤을 때 영화와 관객이 2인3각처럼 더 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기생충’을 비롯한 올해 칸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초청작의 수상 결과는 25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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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프랑스)=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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