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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 암으로 사망…"직무·훈련 때문 아니라면 국가유공자 아냐"

중앙일보

입력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 없음. [중앙포토]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 없음. [중앙포토]

군 복무 중 병사했어도 직무나 훈련이 직접 원인이 아니었다면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군 복무중 암으로 숨진 장모씨 부모가 국가유공자임을 인정해달라며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건강했던 아들, ‘감기’인 줄 알았는데…

장씨는 2008년 12월 입대했다. 이듬해 2월 탄약정비병으로 배치된 그는 탄약에 슨 녹을 제거하거나 재도색, 재표기하는 일을 맡았다. 2개월쯤 지났을까. 장씨는 기침 및 가래 증상이 심해져 탄약창 의무대에서 ‘감기(천식 의심)’ 진단을 받았다. 얼마 뒤 장씨는 목과 어깨 사이에 메추리알만 한 혹을 발견했다. 대전 국군병원에서 급성 림프절염 진단으로 수술을 받은 그는 한 달 뒤 다시 탄약창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목 부위 통증으로 서울의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림프종양 3기 진단을 받았다. 장씨는 항암 치료를 받다 2개월 뒤 숨졌다.

장씨 부모는 2013년 광주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보훈처는 장씨에 대해 순직군경이 아닌 재해사망군경으로 처분했다. 이에 장씨 부모는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 “보직과 질병 상당한 인과관계 인정”

1심 재판부는 장씨를 국가유공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씨의 평소 건강 상태, 장씨가 맡았던 업무의 특수성, 군에서 시기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장씨의 업무와 병사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장씨는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가족력도 없었다. 탄약정비대는 페인트ㆍ아세톤 같은 화학 물질을 다량 사용해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군 유해환경 작업장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또 탄약 정비 근무는 국가유공자법이 규정하는 ‘국가의 수호ㆍ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ㆍ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 있는 직무수행’이라며 군 복무 중 악성 림프종 발병에 따른 사망은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고 봤다.

2심, “상당한 인과관계, 하지만 직접 원인은 아냐”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2012년 7월부터 국가유공자법이 개정돼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바뀐 법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려면 질병으로 인한 사망 시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이 직접 원인이 돼 발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상당한 인과관계만 인정된다면 보훈보상대상자로 규정한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는 보훈 급여금과 일부 수당에 차이가 난다.

재판부는 장씨가 유해물질에 노출돼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림프종 발병의 위험성이 높았던 것은 맞지만 이를 직접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장씨가 탄약정비대에서 근무한 기간이 비교적 짧고, 림프종 발생은 스스로 알아차릴 때 까지 3~6개월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병이 탄약병 복무 이전에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장씨를 국가유공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보훈처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받아들여 상고를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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