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일선에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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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생치안에 정부가 「공권력 총동원령」을 내린 21일 민정당중앙당사에 도둑이 들었단다.
전경·의경들이 2중, 3중의 「철통」경비를 24시간 펴고 있는 당사 2층에 숨어든 범인들은 철제금고를 부수고 3백30여만원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 치안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낸 한 토막 재화가 아닐 수 없다.
집권당사의 금고가 도둑의 손 안에 있는 마당에 보통시민의 가정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떼강도·인신매매·성폭행·조직폭력·마약 등 온갖 기괴한 범죄 앞에 시민의 생명·존엄한 인권이 떨고 있다. 8분에 한 건꼴로 시민들이 각종 범죄의 희생이 되고 있다는 것이 치안당국의 통계다. 정부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올 여름 안에 법질서가 잡혀 가는 것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끔 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힌 것은 그래서 당연하고도 다행스럽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고서도 정부의 약속에 전폭적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 또한 많은 시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 동안 경찰에 내려진 비상근무령·일제소탕령이 몇 차례인가. 합동수사반·특수기동대 등 동원된 기구와 인력은 또 얼마인가. 정부의 말 대로라면 우리사회에서 범죄는 뿌리뽑혀도 여러 번 뽑혔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나타난 결과는 이제 와서 다시 대통령이 공권력 총동원을 지시해야만 할 정도로 오히려 치안상태가 악화되었다면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야 할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번의 약속도 또 그 전의 약속처럼 말 잔치로 끝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민생치안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치안당국이 철저히 무능하거나 일선경찰이 상부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치안당국 지도부의 의지와 그 의지의 실천 주체인 일선 경찰 사이에 단절현상이 있지 않나 우려한다.
무엇이 경찰의 전력투구를 막고 있나. 많은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시국치안 우선의 내부방침, 인력과 장비부족, 과다한 업무에 인사문제와 박봉, 이로 말미암은 사기의 저하, 수사체제의 허점과 자질…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특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조직 기강의 붕괴현상이다.
박종철군 사건을 계기로 나타나기 시작한 경찰의 조직기강 붕괴 현상은 이제 심각히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상사의 인격과 권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명령에는 면종복배한다. 업무 처리는 책잡히지 않을 범위 안에서 형식적으로 한다.
이런 풍조가 경찰 내부에 만연돼 있다.
최근 일련의 파렴치한 경찰관 독직행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퇴폐업소 일제단속정보가 사전에 새나가는 것이나 폭력배 일제 단속에서 송사리만 붙잡히는 까닭도 자명하다. 결국 총동원·일제단속은 간부들의 입호령일 뿐 손발은 따로 노는 꼴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민생치안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경찰조직의 재건으로 일선경찰의활력을 되찾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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