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베스트] 디지털 훑어보기, 깊은 독서의 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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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21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다시, 책으로

다시, 책으로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문명이 전환되면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 방식이 됐다. 지그재그로 단어 몇 개를 훑어서 맥락을 파악하고 결론에 직행하는 식으로 읽기가 이뤄지는 것. 이런 방식의 읽기는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시, 책으로』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디지털 읽기가 익숙해지면서 인류의 엄청난 성취였던 깊이 읽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지신경학자인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아날로그 시절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깊이 읽기는 사람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성취한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깊이 읽기는 유추와 추론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디지털 읽기가 일반화되면서 우리는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를 대하듯 문장을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는다. 그러다 보면 깊이 읽기로만 가능한 비판적 사고와 공감 등이 어려워진다. 저자는 “디지털 읽기로는 세부적인 줄거리를 기억하거나 주장의 논리적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책에는 저자의 충격적인 고백도 나온다. 어느 날 저자는 어린 시절 깊이 감동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기 위해 펼쳐 들었다. 그런데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진 나머지 더는 길고 난해한 문장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생 공부하며 상당한 지적 수준에 이른 독자라 해도 지속적인 훈련이 없으면 깊이 읽는 능력을 빠르게 상실한다는 것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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