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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먹었다는 30만원짜리 점심, 행복감은 얼마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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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 라이프(1)

‘요리를 멈추다’ 저자. 음식을 바꾸면서 간결한 삶을 살게 된 부부가 유럽 주요 도시들에서 경험한 채식문화와 가족이 함께 하는 채식 실천 노하우를 소개한다. 음식을 통해 삶이 얼마나 즐겁고 홀가분할 수 있는지 그 여정을 함께 가보자. <편집자>

맛있는 음식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살기 위해 먹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맛있는 음식에 탐닉한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유명한 식당들을 일부러 찾아갔다. 멋진 요리들을 배웠으니 실제 식당들의 요리를 체험하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도시마다 다양한 식당을 다녔다.

미식의 도시라는 별칭은 누가 지었을까? 프랑스 파리의 르 도용(Le doyen). [사진 심채윤]

미식의 도시라는 별칭은 누가 지었을까? 프랑스 파리의 르 도용(Le doyen). [사진 심채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프랑스 파리의 르 도용(Le doyen)이다. 미슐랭 별 세 개를 해마다 유지하는 식당이다.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과 황후 조세핀이 자주 찾았다는 곳이기도 하다. 늘 예약이 어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운이 좋게도 파리에 머무는 기간에 예약이 가능했다. 한 끼 식사에 한 사람당 30만 원 남짓,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런 것들이 투자라고 생각했다.

점심 코스는 10가지 요리로 구성되었다. 오르되브르와 아페리티프로 식전에 입맛을 돋우고 애피타이저부터 수프, 생선, 육류 요리가 나온다. 중간 휴식으로 입맛을 정리하면 가금류, 채소, 치즈 플레이트, 과일이나 디저트, 티나 커피와 초콜릿이 추가된다. 새 요리가 제공되면 와인도 바뀌어 제공된다. 요리마다 20분에서 30분 정도 텀이 있기에 4시간 가까이 식사 후 식당을 나왔을 때는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고급식당에서는 잠시 시간이 멈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현실감각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최대한 옷을 갖추어 입고 식사를 한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과 우아한 음악,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음식을 제공하는 직원들, 옆 테이블에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는 분위기, 조명에 반짝여 더 화려해 보이는 와인 잔들과 식기들, 하얀 테이블보 등 모든 것이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합당하다는 듯이 우리는 큰 비용을 지불하며 몇 시간에 걸쳐 식사한다. 사람들은 풍족하게 누리는 그 순간에 한껏 고취되어 있다.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이고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돈을 지불하고 잠깐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본다. 자본이 주는 무서운 매력이다.

극과 극의 비교란 이런 것일까? 남프랑스 니스의 허름한 레스토랑, 르 스픽이지(Le speakeasy)는 우리의 기억 속에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70이 넘으신 고운 할머니 혼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우리는 따스한 온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접시의 이가 나가고 허름한 테이블보에 툭 하니 놓인 양념 통들을 잊을 수 없다. 식사 비용으로도 극과 극이지만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이념 또한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모란시장 개고기를 언급한 식당. Strictly Vegan이라는 문구가 강하게 다가온다. [사진 심채윤]

모란시장 개고기를 언급한 식당. Strictly Vegan이라는 문구가 강하게 다가온다. [사진 심채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프린트된 종이를 한장 가져오신다. 성남의 모란시장에 관련된 기사였다. 모란시장 하면 ‘개고기’를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프랑스 니스의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모란시장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전단에는 ‘개고기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으며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개고기 판매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아마 개고기도 축산물에 포함되어 다른 농축산물과 마찬가지로 비과세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할머니의 식당 한쪽에는 전단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아마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에 따라 보여주는 전단이 다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이런 전단을 나누면서 동물해방이나 비거니즘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비거니즘(Veganism)은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뿐 아니라 철학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동물에서 나온 모든 종류의 제품을 선택하지 않고, 동물을 착취하거나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의 소비를 배제하며, 동물을 이용하거나 학대하는 사냥, 투우, 서커스, 동물원 관람 같은 것들도 거부한다. 가죽제품과 양모, 오리털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우리는 동물성 식품이 얼마나 건강에 나쁜지를 인지하고 채식을 시작했다. 건강을 이유로 시작한 채식은 뜻밖에도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인간들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들도 같은 ‘생명’으로 인지할 수 있었고 이제는 건강상의 이유보다 생명 존중 차원에서 더욱 채식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채식을 시작하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짐을 깨닫는다.

물론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채식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현대인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음은 이미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 작은 변화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100만원에 가까운 식사비를 지출한다고 과연 행복할까? SNS에서 떠도는 수많은 음식 사진을 보며 끝없는 인간의 식탐을 발견하게 된다. 남프랑스 할머니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이 차려준 것 같은 그 한 접시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을 경험했다. 오늘도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힐링 레시피를 전한다. 오늘은 좀 가볍게 먹어도 좋지 않을까?

작가의 레시피

남프랑스 할머니의 소박한 한 접시. [사진 심채윤]

남프랑스 할머니의 소박한 한 접시. [사진 심채윤]

여러 채식식당의 음식을 통틀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이었다. 한식으로 활용해서 먹기에 좋은 소박한 식사이면서 채소와 곡물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1. 콩과 현미를 섞어 밥을 준비한다.
2. 생으로 먹고 싶은 채소, 익혀서 먹고 싶은 채소를 구분한다.
3. 단단한 채소들을 끓는 물에 5분 이내로 찌면 부드럽게 먹을 수 있고 단맛이 올라간다.
4.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고추장, 된장 등 좋아하는 양념을 더해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강하라 작가·심채윤 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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