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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신동빈 만난 트럼프 vs 이재용 만난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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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초대를 받았다. 국내 기업인 중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을 둘러보고 면담도 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롯데케미칼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석유화학공장을 세워서다. 롯데가 미국에 투자한 규모는 31억달러(3조6000억원)다. 물론 큰돈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나설만한 거액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은 2260억달러(268조원)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가) 수천개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3조6000억원 투자했다고 칙사 수준으로 대접한 것이다.

이보다 보름 전인 지난달 30일.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화성사업장을 찾았다.

곳곳에서 우려가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통령의 ‘부적절’한 만남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법원이 오해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해명에 나섰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재용 부회장을 7차례 만났다는 지적은 과도한 수치 집계”라고 말했다. “다수의 기업인과 함께 만난 것을 포함한 수치”라는 설명이다. 9일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비판을 예상했다”며 “재판은 재판, 경제는 경제”라고 해명했다.

경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인식차만큼 양국 경제 상황은 판이하다. 미국의 4월 실업률(3.6%)은 49년래 최저를 기록했고,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3.2%)은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고용·투자·수출·생산·민간소비 등 모든 지표가 악화했다. 올 1분기 성장률(-0.3%)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다. 한국 기업도 국내 대신 해외에 투자한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제조업 해외투자 증가율(92.7%)은 최근 3년 평균(3.6%)보다 26배 늘었다. 양국 기업에 대한 인식차가 이런 경제 지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갈수록 민간영역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투자를 좌우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기업 투자를 끌어내지 않는다면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신동빈 회장을 만나서 ‘국적·규모를 떠나 투자하면 대우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보여줬다. 그것이 바로 ‘누구나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포용국가’이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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