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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보행로의 무법자 전동킥보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가영 사회팀 기자

이가영 사회팀 기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길에서 보면 신기하게 쳐다봤던 전동휠이나 전동킥보드는 이제 일상이 됐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동휠과 전동킥보드로 대표되는 개인형 이동수단인 ‘퍼스널 모빌리티(PM)’는 2016년 6만대에서 2022년에는 20만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좁은 인도에서 바로 옆으로 쌩하고 달리는 전동킥보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저렇게 달리면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걱정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월 보도에서 9살 초등학생을 전동휠로 치고 달아난 남성이 뺑소니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직장인인 A씨(29)는 “아이가 넘어졌다”며 “빨리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만 얘기하고 사라졌다. 지난 1월에는 고등학생(17)이 보도에서 걸어가던 초등학생(8)을 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전동킥보드를 몰기 위해서는 원동기나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하지만 심지어 고등학생은 무면허 상태였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PM 운전자가 가해자로 판명된 사고는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8건의 사망사고도 일어났는데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전동킥보드와 충돌한 보행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불안한 보행자들이 인도에 있는 전동킥보드 이용자를 신고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번호판이 없으니 모르는 사람이면 확인을 하기도 어렵다. 보행자 입장에선 전동휠이나 킥보드를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체계적으로 전동킥보드 이용자에게 법규를 알려줄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전동휠이나 전동킥보드는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인도에서 타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대부분의 이용자는 차량 사이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자전거 도로나 인도를 선택한다. “도로에서만 타야 하는지 몰랐다”는 게 주된 이유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인도는 들어가면 안 된다’ ‘안전 장구를 꼭 착용해야 한다’ 등의 필수 안전지식 교육이 시급하다”며 “이를 담당할 정부 부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시속 25㎞/h 이상의 이동수단만 자신들의 관리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는 자전거를 담당하는데, 전동킥보드는 자전거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청은 국토부가 먼저 관련 법규를 만들어야 시행할 수 있다며 나서지 않고 있다. 신 박사는 “보험 문제나 면허증 취득 등 전동킥보드 관련 방안 마련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교통체증 해소에 일조할 수도 있고, 매연이 발생하지 않으니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와 법규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 부처는 ‘나만 아니면 돼’ 식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불안한 보행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가영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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