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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해바라기 양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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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Canon EOS-1Ds MarkII 100mm f5.0 1/40초 Iso400

장맛비 추적추적 내리는 풀숲에서 들려오는 청개구리 울음이 꽤 구성집니다. 물가의 제 어미 무덤이 떠내려갈까 하여 서러워 운다는 설화 때문일까요. 빗소리와 어울린 울음이 정선아리랑의 가락처럼 서럽습니다. '비가 올라나 꾀엑 억수장마 질라나 꾀엑'하는 것만 같습니다.

밭두렁 억새 잎에 쭈그린 놈. 어린 잡목 가지에 곧추서 붙은 놈. 웃자란 옥수수 잎사귀에 거꾸로 매달린 놈. 죄다 손톱만큼 자그마한 놈들이 목청은 황소개구리 못지않습니다.

다른 개구리와 달리 청개구리는 풀이나 나무에서 삽니다. 그래서 나무 개구리라고도 합니다. 그중 소리 내서 우는 것은 수컷입니다. 턱 밑에 있는 주머니를 부풀려 소리를 내는 것이죠. 암컷에게 구애할 때나 대기 중에 습도가 높은 날엔 목이 터져라 울어 댑니다.

무리 중 한 놈이 해바라기에 올랐습니다. 어찌 그리 높은 곳에 올랐을까요.

아무리 키 작은 해바라기지만 높이가 제 몸의 수백 배는 넘습니다. 비를 피해 올랐을까요. 해를 바라는 해바라기와 같은 '바라기'를 가졌을까요. 며칠째 비에 젖은 채로 하늘을 우러른 해바라기도 이 작은 꼬마 친구가 싫지 않나 봅니다. 가운데로 삐져나온 꽃잎이 마치 검지를 펴고 '사랑의 총'을 쏘는 듯합니다.

비 오는 날의 부족한 광량을 극복하기 위해 고감도로 카메라 세팅을 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상황이라 잠깐 정지되는 순간에 피사체를 잡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반대로 고운 화질을 얻기 위해 저감도로 촬영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피사체를 잡을 수 없습니다.

피사체와 마주하면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만 결정은 촬영하는 이의 욕심보다 자연의 상황에 따라야 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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