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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천황폐하, 황태자 부부는 아름다운 커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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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한·일 관계는 험악하다. 단교(斷交)론까지 나온다. 일본의 ‘레이와(令和·영화)’ 시대가 개막됐다. 관계 회복의 기회다. 그걸 낚아채 실천하기는 힘들다. 역사의 기억에 기댈 처지다. 그 속에서 복원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DJ의 일본 방문 때 극존칭 덕담 #‘일왕과 총리’ 분리해 협력 확장 #안중근, 메이지 일왕과 이토 나눠 #‘문재인 외교’ 미숙함 탈피의 단서

21년 전(1998년10월) 장면이다. “천황폐하(天皇陛下), 황태자 부부는 보기에도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천황’은 아키히토(明仁), 황태자는 나루히토(德仁)다. 형식은 외교 수사(修辭). 구성은 극존칭이다. 말의 주인공은 그 시절 김대중(DJ) 대통령이다.

발언자가 다른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지금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기준으론 영락없다. 토착 왜구, 친일파의 아부다. 거친 성토가 쏟아졌을 것이다.

말의 사연은 이렇다. “일본 방문 첫날, 궁성 만찬에서 나는 천황에게 덕담을 건넸다.” (『김대중 자서전』) 그는 천황과 일왕(日王)의 차이를 살폈다. “외교가 상대를 살피는 것이라면 상대 국민이 원하는 대로 호칭하는게 마땅하다… 우리가 고쳐서 부르며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백제 시대 양국 교류로 시작했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성 발언이 이어졌다.

DJ의 접근은 ‘천황과 총리대신’의 분리다. 그것은 심모원려(深謀遠慮)다. 회고록은 이어진다. “일본 국민들이 천황을 존경하는 만큼 민감한 과거사 문제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다. 천황 앞에서의 공격적인 언사는 일본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줄 수도 있었다. … 다음 날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나는 과거사 문제를 거론했다.”

김대중-오부치 회담은 결정적 진전을 이룬다.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오부치의 과거사 언급은 뚜렷했다. “(식민 지배에)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결산은 대중문화 교류다. 그때 대다수 시민단체는 질색했다. “왜색문화가 범람한다.” 그것은 한국인의 역량을 무시한 옹졸함이다. 젊은 세대는 한류를 생산했다. 양국 문화 위상은 역전됐다.

‘일왕과 총리의 분리’는 고뇌와 지혜의 산물이다. 올해가 안중근 의거 100주년. 그것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격살이다. 안중근은 신문 과정에서 이토의 죄상 15개를 나열했다. 열세 번째는 흥미롭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간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기만한 죄(上欺 天皇之罪)다.”

이토는 제국 일본의 최고 원로다. 그에 대한 메이지(明治) 일왕의 신임은 견고했다. 안중근은 그런 사이를 갈라놓는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일본 지도층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분산하는 전략적 지혜다.” 안중근은 ‘절대군주 메이지의 위상’을 파악했다. 그의 법정투쟁은 일본 지식층의 주목을 받는다. 거기에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치열함이 담겼다. 일본과 중국, 우리의 처지에 대한 탐구다. 결과물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다.

‘일본 알기’는 극일(克日)의 추진력이다. 지일(知日)이 부족하면 비분강개에만 의존한다. 1960~70년대 박정희와 김종필(JP), 그리고 김대중은 일본을 알았다. 그 바탕에서 당당함을 갖춘 용일(用日)로 나아갔다. 그 이후의 국가 리더십은 그런 전략적 관점에 미숙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다. 그의 독도 방문이 있었다. 일왕의 방한에 대한 그의 언급도 있었다. 사과를 조건으로 내건 듯했다. 일본사회 전체가 그 발언에 반발했다. 박근혜 외교는 위안부 문제에 집중했다. 막판 작품이 ‘한·일 위안부 합의’다. 하지만 역사는 협정으로 마감하지 않는다. 기억은 재생산된다.

생전에 JP는 ‘합의’를 비판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굴지의 포스코가 생겼다. 포스코가 앞장서(위안부 할머니를 위한)모금을 해야지. 왜 일본에 손을 벌리냐.” 그 관점은 유효하다. 강제징용자 보상 문제의 해법에 적용할만 하다.

그 시절 아베의 과거사 역주행이 본격화했다. 군사대국화와 헌법 개정 쪽으로 달려갔다. 아키히토 일왕은 달랐다. 일왕은 ‘상징’적 존재다. 하지만 ‘말(오코토바·お言葉)’의 권위는 압도적이다. 그는 과거 침략전쟁에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그 말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가치는 분명하다. 그의 이미지는 평화헌법 옹호다. 그의 백제 역사 애착은 선명하다.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와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외교는 그런 간격을 착안하지 못했다. 외교는 인간관계의 합산이다. 지한(知韓)파로 아베를 역포위할 만했다. 그의 헤이세이(平成·평성) 시대는 종료됐다. 하지만 상왕(上王)으로서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문재인 외교’의 우선순위는 남북문제다. 4강 외교는 미숙하고 엉망이다. 한·미·일 3각공조가 헝클어졌다. 한·미동맹도 흔들린다. 그에 따라 곤혹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중국은 한국을 무시한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깔아뭉갠다. 한·일 관계의 재구성이 시급하다. 리더십의 용기와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 역량은 온고지신으로 연마된다. 역사의 상상력이 절실하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