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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고통스러운 짝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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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수상 소감은 귀 기울여 듣게 된다. 한 번의 짧은 기회에 북받쳐 오르는 감사의 마음이 뒤엉키기 일쑤다. 하지만, 눈물 젖은 목소리엔 삶과 꿈이 응축돼 있다. 지난 1일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부문 신인 감독상을 받은 이지원(38) 감독의 소감도 그랬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그래서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영화를 짝사랑해왔다. 이 자리에 서니 더 이상 짝사랑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작인 영화 ‘미쓰백’은 전과 있는 여성(한지민)과 학대받는 소녀(김시아)의 만남을 통해 소수자의 삶과 연대를 다뤘다. “실제 고통받던 아이를 외면한 아픈 죄책감에서 시작”됐고, 흥행 공식과 거리가 멀어서 “제작·개봉 과정은 너무 힘들게 진행됐다”고 한다. 이 감독은 “검증되지 않은 저를 믿어준 투자·배급·제작사, 용감하게 뛰어들어준 배우, 진심과 열정을 보여준 스태프, 미약한 불씨를 살려준 관객, ‘기약 없는 여정’을 응원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 힘들 때 술 사줬던 지인에게 고맙다”고 했다.

팬들의 ‘영혼 관람’도 화제였다. 이미 본 영화의 티켓을 다시 여러 차례 구매해 ‘영혼이 대신 관람한다’는 의미의 소비자 운동이다. 소감의 마지막은 꿈을 믿어준 팬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인 듯하다. “앞으로 더 진심을 담아서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되도록 열심히 살아가겠다.”

지난 4일 북한의 도발에 이 감독의 소감이 계속 되뇌어졌다. 냉·온탕을 오가는 남북 관계는 ‘기약 없는 여정’이다. 진심과 열정, 용기와 응원을 쏟아붓는데도 다시 제자리다. 미약해진 불씨를 살릴 관객은 다시 모여줄까. 그걸 진심으로 원한다면 정부는 이제 좀 더 진솔하게 응원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 ‘고통스러운 짝사랑’의 여정에 함께 해줄 수 있겠느냐고.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