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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간섭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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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스레드니들가(Threadneedle Street)의 노부인.’  런던 스레드니들가에 있는 영국은행의 별칭이다. 1797년 제임스 길레이가 돈 궤짝에 앉아 이를 지키는 노부인(영국은행)에게 구애하는 척하며 그녀의 주머니를 털려는 신사를 풍자한 만화에서 따왔다. 신사는 당시 영국 총리이던 윌리엄 피트 더 영. 전쟁경비 조달을 위해 금본위제를 중단시키고 화폐 발행을 종용한 그를 비꼰 것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돈 궤짝)은 정치인이 군침을 흘리는 먹잇감이다. 정부의 재정 지출은 의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통화정책은 이런 견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비 조달이나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을 압박하는 이유다. 1970년대 정치인의 손에 놀아난 금리로 인해 물가가 치솟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각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다.

중앙은행의 독립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달 13일 커버스토리 ‘간섭의 시대(Interference Day)’에서 “통화정책이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을 위협하는 건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득세,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의 단맛을 잊지 못하는 경제다. 경기 부양에 목을 매는 정치인에게 중앙은행의 ‘머니 프린팅’은 매력적인 카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이유다.

‘중앙은행 등 떠밀기’에 한국도 가세했다. 금리 인하를 고려치 않는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도 1분기 마이너스 성장 등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금리 인하론에 힘을 싣고 있다. 돈 궤짝을 지키려는 자와 털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필연적이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남용이 빚을 부작용이다. 정치에 휘둘린 통화정책의 말로는 충분히 지켜봤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