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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과정서 뇌손상 당한 아기, 보험금 탈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6)

태아보험은 태아가 출생 이후 피보험자가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출생 전 분만단계에서 사고가 난 경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중앙포토]

태아보험은 태아가 출생 이후 피보험자가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출생 전 분만단계에서 사고가 난 경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중앙포토]

어린 자녀를 둔 경우 자녀에게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대비해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험회사는 이러한 어린이보험에 태아에 대한 사고나 질병도 추가해 ‘태아보험’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해 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태아보험의 약관에는 ‘태아는 출생 시에 피보험자가 된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생 전 분만단계에서 태아가 사고를 당한 경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논란이 됐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출생 전 분만단계에서 태아가 사고를 당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습니다.

임산부 A는 장차 태어날 태아 B를 위해 출생 전 X 보험회사와 피보험자는 태아 B, 수익자는 A, 보험기간은 계약 체결일부터 출산예정일까지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는 출산예정일 S 산부인과에서 흡입분만을 통해 태아를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태아는 분만과정에서 뇌 손상을 입어 심각한 장해를 갖게 됐고, 이후 영구장해진단을 받았습니다. A는 X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태아도 상해보험의 피보험자 자격

태아 초음파 사진. 태아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었다. 보험회사는 이런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중앙포토]

태아 초음파 사진. 태아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었다. 보험회사는 이런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중앙포토]

상해보험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급격하고 우연한 사고로 인해 신체에 손상을 입는 것을 보험사고로 하는 인(人)보험이므로, 피보험자는 신체를 가진 사람(人)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태아는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요.

태아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태아와 관련된 법은 조금 복잡합니다. 태아도 엄연히 생명의 주체이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출생하지 않았으므로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X 회사는 보험약관에 ‘태아는 출생 시 피보험자로 된다’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사례에서 보험회사 X는 태아는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보험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험회사 X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태아도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①상법상 상해보험계약 체결에서 태아가 피보험자의 자격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고, ②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 태아의 형성 중인 신체도 보호의 필요성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호해야 하고, ③약관이나 개별 약정으로 출생 전 상태인 태아의 신체에 대한 상해를 보험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 보험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고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불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아도 피보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특별약관보다는 개별약정이 우선

대법원은 보험회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태아도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사진 pixabay]

대법원은 보험회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태아도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사진 pixabay]

A와 X 간에 체결된 상해보험의 특별약관에는 ‘태아는 출생 시 피보험자로 된다’라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X는 위 특별약관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 거절은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태아를 피보험자에서 제외한 특별약관과 이와는 반대로 태아를 피보험자로 포함한 개별 약정 중 어느 것의 효력이 우선할까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당사자는 약관에서 정하고 있는 사항에 관해 사업자와 고객이 약관의 내용과 다르게 합의한 사항이 있을 때는 그 합의 사항은 약관보다 우선한다’며 ‘개별약정 우선의 원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즉 당사자는 약관의 내용과 다르게 계약할 수 있고, 그것의 효력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 X는 보험대상자인 B가 태아임을 알고 있었고, 계약체결일부터 보험료를 지급해 보험기간이 개시된 점 등 보험계약을 체결하게 된 동기와 경위, 절차, 보험계약에 의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와 X 사이에 출생 전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개별 약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위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에서도 태아가 피보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태아보험 가입자인 산모가 제왕절개술을 통해 태아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장해를 입게 된 사안에서 보험회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보험금 지급을 명한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그동안 보험회사는 출생 전 사고를 당한 태아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왔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련의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보험회사의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아는 일반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법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태아도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는 이번 판결로 인해 태아의 보호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환영받을 판결입니다.

김경영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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