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 사실을 보험 개시 전날 알았다, 보험금 탈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19.01.19 07:00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3)

20년 경력의 현직 변호사. 억울하지 않기 위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내 권리는 내가 지켜야 한다. 간단한 법률상식을 모르면 낭패다. 최소(最小)한 알아야 할 법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알면 도움되는 법률 상식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편집자>

A씨는 보험 개시되기 전 병의 진단을 받았고, 보험이 개시되고 암 확진을 받았다. 보험회사는 보험기간에 발병한 질병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보험약관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는데, A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중앙포토]

A씨는 보험 개시되기 전 병의 진단을 받았고, 보험이 개시되고 암 확진을 받았다. 보험회사는 보험기간에 발병한 질병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보험약관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는데, A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중앙포토]

어느 날 A는 B 보험회사의 전화 상담원으로부터 보험가입 권유를 받고서는 보험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전화 상담원은 1회 보험료가 통장에서 인출된 때 보험이 개시된다고 안내했다. 며칠 후 A는 복통과 설사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갔다가 ‘상세 불명의 위장염 및 대장염, 위 십이지장염’ 진단을 받았다. 다음 날 A의 통장에서 1회 보험료가 인출되면서 보험이 개시되었고, 보험회사는 보험증권을 발송했다.

한 달 후 A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 결과 암의 일종인 위장관 기질 종양 확진을 받았다. A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B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런데 B 보험회사는 보험기간에 발병한 질병을 치료한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보험약관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A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보험회사의 약관에는 “회사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에 질병(다만 보험계약 청약일로부터 과거 5년 이내에 그 질병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제외)으로 입원하거나 통원해 치료를 받는 경우 질병입원 의료비 또는 질병통원의료비를 보상해 드립니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보험 개시 전 보험사고는 원칙적으로 계약 무효
원칙적으로 보험 계약 체결 이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계약은 무효지만, 법원은 불명확한 보험약관의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오고 있다. [중앙포토]

원칙적으로 보험 계약 체결 이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계약은 무효지만, 법원은 불명확한 보험약관의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오고 있다. [중앙포토]

원칙적으로 보험 계약 체결 이전에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계약은 무효입니다. 우연한 사고를 대비하는 것이 보험입니다.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했다면 우연성이 없어 보험계약은 무효로 됩니다. 우연성이 없는 대표적인 경우가 보험사기입니다. 계약자가 의도적으로 보험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상법도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그 계약은 무효로 한다. 그러나 당사자 쌍방과 피보험자가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644조). A의 경우 보험개시 전에 발병했으므로 보험 계약을 무효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불명확한 보험약관은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

보험계약을 체결하면 보험회사는 미리 작성해놓은 보험약관을 주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계약 조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사업자에게 ①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작성하고 ② 표준화·체계화된 용어를 사용하며 ③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부호, 색채, 굵고 큰 문자 등으로 명확하게 표시해 알아보기 쉽게 약관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험회사도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약관을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약관에 애매하거나 아예 관련 규정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법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법원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명확하지 않은 약관은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오고 있습니다.

사례의 경우 B 보험회사의 약관에도 중요한 계약 조건들이 규정되어 있었지만, 보험개시 전 발병한 질병을 보험개시 후 치료받은 경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34;B의 보험약관에는 입원 또는 통원 치료의 원인이 되는 질병이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A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34;고 판결하였다. [중앙포토]

법원은 &#34;B의 보험약관에는 입원 또는 통원 치료의 원인이 되는 질병이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A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34;고 판결하였다. [중앙포토]

결국 A와 B의 다툼은 소송으로 해결됐습니다. 법원은 “B의 보험약관에는 보험기간 중 질병으로 인해 입원 또는 통원 치료를 받은 경우 원고가 그 입원 의료비 또는 통원의료비를 보상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 입원 또는 통원 치료의 원인이 되는 질병이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A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대법원 2011다70794). 명확하지 않은 약관을 A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만일 A가 보험개시 전에 발병된 사실을 알았다면 위와 같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상법은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 중요 사항에 대한 고지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보험계약 체결 시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례의 경우 A는 보험개시 전 ‘상세 불명의 위장염 및 대장염, 위 십이지장염’ 진단을 받았고 이를 보험회사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을 해지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B 보험회사 약관에는 청약할 때를 기준으로 중요사항을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A가 전화로 청약할 당시에는 발병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고지의무위반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청약 때 발병 몰랐지만 고지의무 위반은 아냐

현실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약관을 통해 계약을 체결합니다. 약관이 불리하다고 해서 권리를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A가 약관을 근거로 한 B의 주장에 그대로 굴복했다면 낭패를 보았을 것입니다. A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찾았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약관이 불리하다고 해서 권리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김경영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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