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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낳은 계란의 신비한 따사로움…산막에 갈 핑계거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8)

정 박사가 가져온 병아리 16마리. [사진 권대욱]

정 박사가 가져온 병아리 16마리. [사진 권대욱]

진달래·개나리·목련 피고, 조팝나무 꽃망울 달릴 때쯤이면 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조불조불 올라오는 잡초도 뽑아야 하고, 부서진 데크며 흔들리는 난간도 손봐야 하고, 곡우가 요청한 출입문도 달아야 한다. “병아리 백계 9마리와 청리 7마리를 오늘 가져가기로 한 분이 키울 장소가 갑자기 없어졌다고 해 갈 데가 없어요. 혹 키울 수 있을까요? 부화한 지 20일 정도 됐습니다.” 정 박사가 병아리를 가져온다니 닭장도 손봐야 한다.

도저히 내 깜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읍내 최 사장을 불러 세세히 작업을 지시한다. 지시하는 거야 내 주특기라 새로울 것 없지만 사람 불러 일 시킬 때 몇 가지 원칙이 있긴 하다. 첫째 작업 지시는 가급적 세세하게, 둘째 돈은 좀 넉넉하게, 셋째 달라고 하기 전에 지불을 칼같이 먼저. 그래야 말썽 없고, 오라면 잘 온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이 불편한 곳에 달려와 주겠는가. 분수를 알고 너무 따지지 말고 조금 손해 보듯 살면 만사가 편안하다.

장고 끝에 닭장 설계 완성

닭장 앞에서 풀을 뽑는다. 지금은 병아리라 문제없지만 조금 있으면 날아다닐 것이니 막아야 한다. 내가 없을 때 솔개라도 채가면 안 되니 또 막아야 한다. 안팎으로 막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니 안 할 도리가 없다. 어떻게 막을까 궁리한다. 나무 폴대를 세우고 방부목 빔을 걸어 촘촘히 막아볼까. 중간에 기둥을 하나 세우고 철제 폴에 사선 구조로 나무 빔을 세울까. 늘 그렇듯 비용, 작업의 난이도, 내구성을 고려하면서도 외관과 전체적 조화를 무시하지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이곳의 모든 것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비막이, 가마솥 화덕, 원형 탁자, 원두막과 데크, 야외 주방과 노래방, 닭장과 개집, 난로와 강의실…. 어느 것 하나 그냥 만들어진 것은 없다. 그러니 더 애정하고 아끼게 된다.

장고 끝에 설계를 끝낸다. 따로 폴대를 세우지 않고 기존 전봇대를 활용하고, 전봇대를 기둥 삼고 철제 울타리와 전봇대 사이에 로프(마닐라 또는 나일론 로프)를 사선으로 촘촘히 걸며, 기존 수목은 최대한 살리되 울타리와 사선 로프엔 장미와 넝쿨 식물을 올려 그늘을 확보하고 틈새를 메우기로 했다. 완성된 모습을 그려본다.

정 박사와 함 사장, 곡우 그리고 산막 지킴이들의 도움으로 반나절만에 닭장을 완성했다. [사진 권대욱]

정 박사와 함 사장, 곡우 그리고 산막 지킴이들의 도움으로 반나절만에 닭장을 완성했다. [사진 권대욱]

장미 넝쿨과 찔레, 담장이 넝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멋진 자연 지붕이 생기고, 그 아래 종종거리며 땅 헤집고 벌레 잡으며 돌아다닐 닭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설계가 끝났다. 이젠 작업계획을 세우고 자재를 확보하고 시공하면 된다. 말은 쉬워도 나 혼자 하기는 불가하다. 아우 정 박사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이렇게 또 한나절이 간다. 생각하고 적는 그 자체가 모두 힐링이다. 무엇이든 몰입되고 힐링 되는 산막. 앞뜰 복숭아밭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생각난 김에 해치웠다. 정 박사와 함 사장, 곡우 그리고 산막 지킴이들의 도움으로 반나절 만에 완성했다. 복사꽃, 벚꽃, 만개한 닭들의 꽃 대궐. 설계는 조금 변경됐지만 생각보단 멋지게 지어졌다. 철망으로 촘촘히 막아 천적을 막는다. 족제비나 너구리, 솔개만 천적인 줄 알았더니만 쥐 또한 그렇더라.

15년 전 혼자 있을 때 이 닭장을 만들었고, 수세식 청소도 가능토록 수도전도 별도로 뽑고 위아래를 샌드위치 판넬로 막고 위에 철망을 두는 등 나름 신경을 썼었지만 쥐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보니 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 똥구멍을 물고 있더라. 멍청한 녀석은 해코지를 당하면서도 까박까박 졸고 있고. 그래서 알았다. 쥐 무서운 줄. 촘촘한 철망으로 아래 옆을 완벽히 차단한다. 이 작업도 간단치가 않다. 일일이 철삿줄로 바느질하듯 철망을 꿰매야 한다.

계사가 완성됐다. 모이를 넣고 물을 넣어준다. 아직은 병아리들이니 다음 달쯤엔 알받이도 폭신하게 하나 만들어 넣어줘야 할 거다. 생명을 둔다는 게 마음 많이 가고 수고로운 일이지만 얻어지는 기쁨이 있어 기꺼이 수용한다. 이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따뜻한 봄볕 아래 삐악삐악 병아리들의 아장거림과 힘찬 횃대 수탉의 울음소리나 따뜻한 계란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신비로운 따사로움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만고의 진리를 또 깨닫게 해주는 산막.

닭장 안을 기웃거리는 대백이

완성된 닭장의 모습. [사진 권대욱]

완성된 닭장의 모습. [사진 권대욱]

내가 있을 땐 병아리들을 방사해도 되지만 이때는 대백이 누리는 반드시 묶어줘야 한다. 진돗개는 움직이는 모든 동물은 다 잡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는 닭도 예외는 아니다. 뚝딱뚝딱 닭장이 완성되고 정 박사가 가져온 물통이며 모이통에 자동온도 조절이 되는 스티로폼 병아리 집도 들여놓고, 릴선을 연결해 전원도 확보한다. 온도 20도 이하면 병아리가 추워 죽어 보온이 필요해서다. 아직 날지도 못하는 어린 것들이지만 후일을 위해 횃대도 걸었다.

대백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닭장 안을 어슬렁거리기에 짐짓 모른 척하고 문을 잠가버렸더니 조심하는 눈치다. 날 풀리고 요 녀석들 좀 크면 개들을 묶어 놓고 풀어 놓을 것이다. 온 사방 다니며 흙을 헤집어 벌레도 잡아먹고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며 잘 자랄 것이다. 알도 곧 낳게 될 것이니 수탉도 잘 보전해 유정란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병아리도 만들어보자. 먹어봐서 알지만 토종 계란은 탱글탱글하고 쉬 상하지 않으며 맛도 뛰어나다.

알 품고 있는 닭 내보내고 방금 낳은 따뜻한 계란 손에 쥐는 맛이 어떤지 아는가. 양지 녘에 무리 지어 다니며 종종거리는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지. 삶이 무료해지거나 갑갑해지는 날이면 병아리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생각할 것이다. 산막에 갈 또 하나의 핑계를 만든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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