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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이 쏘아올린 정치권 고발전쟁…“수사권 조정 대상에 키 쥐어줘”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법률위원장, 이재정 대변인(오른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대치에 따른 폭력 사태와 관련, 29일 오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에 앞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법률위원장, 이재정 대변인(오른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대치에 따른 폭력 사태와 관련, 29일 오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에 앞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발 의원 한국당 49명, 민주당 15명 등 67명

여‧야의 패스트트랙 대치가 검찰 고발전으로 확대됐다. 30일까지 관련해서만 여야 의원 67명이 고발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모두 추가 고발을 예고해 향후 100여명의 의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9일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주요 안건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이다. 수사권 조정 대상인 검찰이 국회의원 3분의 1가량을 조사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29일 서울중앙지검에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을 국회선진화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26일 한국당 의원 18명을 고발한 데 이은 2차 고발이다. 민주당과 맞춰 고발 대열에 합류한 정의당도 29일 한국당 의원 39명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중복 고발을 제외하면 한국당 의원 49명이 피고발인이 됐다.

한국당도 민주당의 1차 고발 다음 날인 27일 맞대응에 나섰다. 홍영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15명, 바른미래당‧정의당 의원 각 1명을 폭력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강제추행‧모욕 등을 당했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대치 이후 고발한 의원은 총 18명이다.

여·야 추가고발 예고에 사무처까지 가세 

국회사무처까지 30일 한국당 의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하면서 피고발 국회의원 수는 더 늘 전망이다. 앞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9일 “직접 휴대전화 카메라로 불법 행위를 한 사람 사진을 약 30장 찍어놨다”며 “내 이름으로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한국당도 같은 날 “폭력은 민주당에서 시작한 것이고 책임을 묻겠다. 추가 고발하겠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의 얼굴을 만지는 장면. [뉴스1]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의 얼굴을 만지는 장면. [뉴스1]

정치권의 ‘쌍방 고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에 배당됐다. 검찰은 사건 배당까지는 마쳤지만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고발이 끝나지 않아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진 않고 있다.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중앙지검에 배당된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할 가능성도 있다. 대검찰청은 문 의장에 대한 고발 건은 서울남부지검이 수사하도록 했다.

일만 있으면 줄고발…일선 청 곳곳에 정치사건

정치 갈등을 국회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수사기관에 맡기는 일은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남우)는 지난 2월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에 대한 명예훼손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한국당 곽상도 의원을 고발한 건을 배당받아 수사 중이다. 아직 관련자 소환조사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형사1부는 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2016년 미국 출장 당시 스트립바를 방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는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일)가 맡아서 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문화재청과 목포시청을 압수수색해 자료를 확보하고 문화재청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고 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범위를 확대해 손 의원이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 과정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남부지검 형사2부(부장 김지헌)는 5.18 폄하 발언으로 민주당 설훈‧민병두 의원 등에 의해 고발된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사건을 배당받아 조사중이다.

법조계 "정치의 사법화, 후진적 민주주의"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수사권 조정 대상인 검찰에 키를 쥐어준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법상 국회회의방해죄는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 원 이하,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2000만 원 이하의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 검찰의 기소 여부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의원직 상실은 물론 피선거권 제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30일 새벽 여의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위)가 열린 정무위원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30일 새벽 여의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위)가 열린 정무위원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대검찰청 간부급 검사는 “검찰 권력이 비대하다고 지적하는 정치권이 앞장서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 권한을 부여했다”고 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 내에서 '우리가 하수종말 처리장이냐'는 말까지 나온다"며 "여당이 앞에서는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검찰의 수사권을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치 질서 자체가 붕괴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최근 ‘정치의 사법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판결 권한이 있는 법원도 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도록 장려하는데 정치권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없이 사법기관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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