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병수발·억대 빚, 아버지와 '극단적 선택' 40대… 배심원 평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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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죄 없는 아버지는 내가 모시고 간다” 아버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 남성이 동생과 전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 메시지다.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바다에 빠진 승용차가 크레인으로 올려지고 있다. 이 차량을 운전하던 40대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태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바다에 빠진 승용차가 크레인으로 올려지고 있다. 이 차량을 운전하던 40대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태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남성은 병든 아버지를 차에 태운 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자신만 살아남았다. 구조된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뒀다. 지난 29일 이 남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배심원들은 전원 유죄를 평결했다.

아버지 차에 태운 뒤 함께 바다로…구조 후 아버지 숨져 #배심원 전원 '유죄 평결' 형량은 7년·8년 엇갈려 #대전지법, 양형기준·배심원 의견 고려 징역 7년 #피고인 A씨 "아버지 짐될까 범행, 죗값 받겠다"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A씨(41)가 자신의 차량에 아버지(73)를 태운 뒤 그대로 바다로 돌진했다. 남성은 해경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차 안에 남아 있던 아버지는 119구급대에 후송돼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A씨 아버지는 20년 넘게 병을 앓고 있었다. 뇌병변장애 3급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정신은 온전했지만 A씨가 수발을 들지 않으면 외출이 어려울 정도였다. 부인과 이혼하고 홀로 아버지를 부양하는 A씨는 1억원이 넘는 빚에 시달렸다. 매달 받은 월급 300만원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딸의 양육비를 보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20만원 내외였다.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승용차가 바다로 돌진하고 있다. 이 차량을 운전하던 40대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태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진 태안해경]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승용차가 바다로 돌진하고 있다. 이 차량을 운전하던 40대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태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진 태안해경]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술을 마시고 아버지를 자신에 태웠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전 부인, 딸과 저녁도 먹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바다로 갔다. 정신이 멀쩡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디가?”라고 물었고 아들은 “아버지 죄송해요”라고 했다. 부자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존속살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A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많은 빚과 20년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는 게 어려웠다”고 범행동기를 털어놨다. 자신이 죽으면 남겨진 아버지가 동생들에게 짐이 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A씨가 자신만 살아남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이유에서다.

태안해경은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바다에 빠져 40대 남성은 구조되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숨지는 사건을 수사했다. [연합뉴스]

태안해경은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바다에 빠져 40대 남성은 구조되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숨지는 사건을 수사했다. [연합뉴스]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은 지난 29일 오후 1시30분 대전지법 제12형사부(이창경부장팡사)에서 진행됐다. 재판에는 A씨의 동생과 지인들도 참석했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A씨의 동생은 “(형이)어려움을 호소했다면 어떻게든 도왔을 것”이라며 “다만 죗값을 받아야 하겠지만, 선처를 해주시길 바란다. 형량이 줄어들기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사실과 사건의 발생부터 수사의 진행 과정을 상세하게 배심원들에게 설명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익사시킨 사건이다. 고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8년을 구형했다. 반면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이 자신의 죄를 깊이 반성하고 있다. 오랜 시간 혼자 책임지는 것에 익숙하고 그가 처했던 당시 상황을 거론하며 배심원이 현명하게 판단해줄 것을 호소했다.

지난 29일 대전지법에서는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자신의 차량에 아버지를 태우고 돌진해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대전지법에서는 지난해 8월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포구에서 자신의 차량에 아버지를 태우고 돌진해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A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동생들과 (아버지)부양문제로논의했지만, 분란을 우려해 혼자서 고민했다. 아버지께 죄송하고 동생들에게도 미안하다. 주시는 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양형기준과 배심원 의견 등을 고려했다”며 A씨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전원은 A씨에 대해 유죄 평결했다. 4명은 징역 8년, 3명은 징역 7년의 양형 의견을 제시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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