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의사법인’ 제안한 고광욱 유디 대표
최근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뻔한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허가가 결국 취소됐다. 이 과정에서 ‘영리병원’과 함께 ‘의료 민영화·영리화’ ‘1인 1개소법’ ‘네트워크 병원’ 등 갑론을박이 한창인 관련 용어들이 화제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1992년 개원 이래 120여 개의 치과를 구축하며 대표적인 네트워크 병원으로 성장한 유디치과도 그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대방로에서 고광욱(39·유디치과 파주점 대표원장) 유디대표를 만났다.

고광욱 유디 대표는 의사들이 모여 만든 ‘의사법인’이 허용되면 의료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의료 민영화·영리화에 대해 일부 부정적 시선이 여전하다.
- “미국과 같은 의료시스템은 나 역시도 반대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의료 민영화·영리화, 영리병원 등이 의료의 공공성을 해친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란 건강보험을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것이다. 의료 영리화는 의료서비스를 돈 버는 수단으로 삼을 자격이 누구에게 어디까지 있는가의 문제다. 의료는 예전부터 영리화됐다. 영리 추구가 나쁜 건 아니다. 영리를 추구하면서 나쁜 수단을 쓰는 게 문제다. 영리병원은 ‘영리법인 병원’의 줄임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자격은 의사, 비영리법인(대학 재단, 공공기관 출연 재단 등) 등에 한하는데 제주 녹지국제병원처럼 기업(영리법인)이 개설하는 병원이 영리병원이다.”
- 현재 국내 치과업계의 의료 서비스의 한계점은 무엇인지.
- “국내 병·의원, 특히 치과계는 아직도 낙후된 산업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을 의사 본인이 마련해야 하고 진료는 물론 경영까지 의사가 다 해야 한다. 1인 공방이나 다름없다. 이 방식이 예전엔 문제될 게 없었다. 특히 치과 분야는 의사 개인의 손 기술이 얼마나 야무진지가 병원 성공의 관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료 기술·장비가 첨단화되면서 1인 병원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의사 혼자서는 고가의 첨단 장비를 구입하기 어려운 데다 이 비용을 혼자 감당하려면 환자 수가 많아야 하는데 요즘 환자들은 크고 번듯한 대형 병원으로만 몰려간다.”
-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네트워크 병원이 등장한 것인가.
- “그렇다. 특히 동네병원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치과 업계는 더욱 그렇다. 그간 치과 의사는 치과대학에서 배운 시술법으로 졸업 후 30~40년간 의료 현장에서 써먹었다. 하지만 요즘 의학계엔 첨단 장비나 기술이 빠른 속도로 나온다. 네트워크 병원처럼 젊은 의사들이 의기투합해 공동으로 개원한다면 새 기술이나 더 좋은 의료 장비를 합리적으로 갖출 수 있다. 이를 통해 의사는 경쟁력을 높이고 환자는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여러 의사가 연대를 이뤄 동업 관계를 형성한 것이 네트워크 병원이다. 이들은 재료를 공동구매하고, 병원(의사) 혼자 구입하기 힘든 첨단 장비를 구매해 한 사업장에 두고 함께 사용할 수 있다. 그 덕에 진료비도 낮출 수 있다. 유디치과의 경우 이런 해법을 통해 개당 300만~400만원이던 고가의 임플란트 시장에서 150만원 전후의 반값 임플란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동종 치과 의사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이 근거로 대는 것이 바로 1인 1개소법이다.”
- 1인 1개소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 “1인 1개소법은 9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만 제정된 법이다. 원래는 의사가 한 장소에서만 진료하게 만든 법이다. 의사 수가 부족했던 당시, 의사가 아닌 사람(간호사 등 무자격자)이 불법으로 진료 현장에 투입될 우려를 막기 위한 조처였다. 그런데 네트워크 병원이 등장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진 개원가에서 2012년 이 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개설’에 한한 법률조항에 ‘운영’을 추가한 것이다. 가령 의사 세 명이 한 건물, 한 장소에 개원할 수 있지만 각각 세 개 지점에서 공동 창업 또는 운영할 수 없다. 한 장소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1인 1개소법은 구시대적일 뿐 아니라 진료비 고가 담합의 도구로 왜곡되기까지 했다. 영리병원 도입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의료계 스스로 선진화돼야 한다. 그 길목을 가로막는 게 바로 1인 1개소법이다.”
- 그렇다면 함께 고민해 볼 대안이 있나.
- “‘의사법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법무법인·회계법인·세무법인처럼 분야별 전문가가 직접 차린 법인이 있지 않은가. 의사법인은 의사들이 모여 만든 회사다. 기업이 참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사법인에서 대출 받아 구입한 첨단 장비를 한 곳에 설치해 공유할 수 있다. 3D 스캐너의 경우 구입비만 최소 수천만원에서 억 단위로 비싸다. 이 장비를 살 여력이 없는 동네병원에선 치아를 본뜨고 석고를 붓는 등 원시적인 방법으로 금니를 때운다. 그런데 3D 스캐너만 있으면 환자 개개인의 치아에 딱 들어맞는 금니를 뚝딱 만들 수 있다. 유디치과는 4개 지점에서 3D 스캐너를 시범 운영하고 올 하반기까지 10여 대 더 구매할 예정이다. 2년 안에 모든 지점에서 이를 이용할 계획이다. 3D프린터는 유디치과 전 지점이 거래하는 치과 기공소에 설치됐다.”
고가 첨단 장비 구입 쉬워져 #진료비 절감 등 긍정적 효과 커 #1990년대 제정된 1인 1개소법 #동네병원 현실과 동떨어져
글=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