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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쏟은 복제견 메이의 죽음···체세포·정액 과다 채취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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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비글구조네트워크 등 동물단체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동물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학대 실험 의혹’을 받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의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이태윤 기자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비글구조네트워크 등 동물단체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동물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학대 실험 의혹’을 받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의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이태윤 기자

'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동물권 단체들이 복제견 '메이'의 동물학대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와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세 단체는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대 동물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공동성명서를 읽고 이병천 교수를 파면하고 비윤리적인 복제 관련 동물 연구와 사업 원천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2005년 세계 최초로 복제견 '스너피(Snuppy)'를 탄생시킨 국내 동물복제 권위자다.

지난 2월 검역탐지견 '메이'가 서울대에서 동물 실험 중 사망했다.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메이가 실험 과정에서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메이의 건강했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지난 2월 검역탐지견 '메이'가 서울대에서 동물 실험 중 사망했다.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메이가 실험 과정에서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메이의 건강했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학대 의혹을 받은 메이는 2012년 10월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의 체세포 복제로 탄생한 비글 종 복제견이다. 2013년부터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센터에서 검역 탐지견으로 5년간 일한 메이는 지난해 3월 다른 검역 탐지견 페브, 천왕이와 함께 서울대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지난 2월 '원인 모를 급격한 체중 저하' 등에 의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가 숨지기 전 앙상하게 마른 몸과 코피를 뿜는 영상 등이 공개돼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체세포ㆍ정액 과다 채취 의심

이 교수가 진행한 연구의 이름은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발주한 사업이다. 연구팀이 작성한 연구개발계획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1년까지 5년간 진행되고 총 25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해당 연구를 발주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 연구가 "운동능력이나 집중력 등 높은 탐지견을 생산하고 테스트하는 연구"라고 말했다.
메이가 받은 실험에 대해서는 "체세포 핵이식 기술 통해서 검역 탐지견 생산하고, 수컷의 정액을 뽑아서 암컷 난자에 수컷 핵을 이식·생산했을 때 기능이 유지되는 지 등 보는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의 후각 능력 등은 보통 부(父)성 유전을 한다"며 "우수한 수컷이 있으면 거기서 핵을 뽑아서 난자에 넣어서 대리모 통해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 속 메이는 비쩍 마르고 생식기가 비정상적으로 돌출된 모습이었다. 체세포와 정액을 과하게 채취당해 몸에 무리가 왔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복제견이 일반 견과 견주어 번식능력 등이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체중 등 건강상태 변화에 따른 번식 능력 등을 실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계획서에는 '번식학 및 생리학적 정상성' 분석 실험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동물 실험이 국민에게 무슨 도움되나"

이날 서울대에 모인 30여명의 동물권 단체 활동가들은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특수 목적견 복제사업은 과학적·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의 생명공학센터인 헌팅던 생명과학연구소에 따르면 동물실험 결과가 인간 임상시험에서도 나타날 확률은 5∼25% 수준이라고 한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세 단체는 공동성명문을 통해 “(동물복제연구는) 수혜자가 국민이 아닌 이병천 교수와 일부 공무원 그리고 복제견 공급 사업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동물실험 규모는 커지는 추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실험동물 마릿수는 2013년 약 196만 마리에서 2017년 약 308만 마리로 5년 새 약 57% 늘었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센터로 돌아온 검역탐지견 메이가 허겁지겁 사료를 먹던 중 코피를 뿜고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지난해 11월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센터로 돌아온 검역탐지견 메이가 허겁지겁 사료를 먹던 중 코피를 뿜고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상임이사는 “세계적으로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동물실험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대한민국만 유일하게 가파른 증가세를 거듭하며 세계 5위 동물실험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동물권의 요구를 수용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 복제사업 약 50억 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 돈이면 정상적으로 태어난 개를 훈련해 사역견으로 보내기에 충분한 돈이다”고 비판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복제견 한 마리를) 검역 탐지견으로 만드는 데 6000만원이 들고 복제견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수십 마리의 다른 개들이 희생된다”며 “동물 실험을 위한 생명 윤리에 대한 어떤 부분도 사회적 논의 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모든 연구·개발 과제는 매년 연차 실적 계획을 받아서 평가한다”며 “관련 연구는 국가 과학기술 우수성과 100선 뽑혔던 연구로 해당 연구 역시 매년 평가 성적 양호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세 단체는 ▶국가주도 동물복제 사업 전면 폐지 ▶국내 전반적인 동물실험 체제 점검 및 보완 ▶이번 사태 관련 중앙부처·공무원·서울대 간 유착관계 조사 ▶서울대 수의과 대학에 계류 중인 은퇴 탐지견 페브·천왕이 동물권단체에 즉시 이관 등을 요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대는 지난 18일 연구를 중단시키고 이 교수가 맡은 실험동물자원관리원 원장직 직무를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이러한 실험 과정에서 동물 학대 여부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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