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리얼미터, 질문 바꿔 조사한 뒤 “이미선 임명 찬성 높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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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회 조사) 교과서에 사례로 넣고 싶은 사건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21일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질문 바꾸기’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과학도에게 “다른 설문 문항으로 여론조사를 했다면, 두 여론조사 결과는 절대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에 이번 논란이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는 게 설 교수의 설명이다.

첫 조사 땐 “이미선 적격” 29% #두 번째 땐 “임명 찬성” 43% #토씨만 바꿔도 조사 결과 다른데 #리얼미터 “주제 같아서 무리 없다”

리얼미터는 지난 15일과 18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관련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첫 조사에서는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적격·부적격 여부를, 두 번째 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임명 찬반을 물었다. 두 조사 공히 문 대통령 임명 전에 실시했다.

첫 조사에선 부적격 응답이 54.6%로 적격(28.8%)보다 많았지만, 두 번째 조사에선 임명 찬성(43.3%)과 반대(44.2%)가 엇비슷했다. 리얼미터는 두 조사를 일대일로 비교하며 “(이 후보자에 대한) 긍정 여론은 14.5%포인트 상승했다. 여론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설문 항목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중앙일보는 19일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자 리얼미터는 해명자료를 내고 “정국 대립 지점이 바뀌었다면 바뀐 대립지점으로 조사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서로 다른 질문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주제나 소재이고 복수의 정보가 존재한다면, 여론의 흐름을 분석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냈다. 설 교수는 “문항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조사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론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려면 같은 질문으로 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는 『사회조사분석』에는 여론조사의 정밀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나온다. 1990년대 국내 한 조사기관이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정치가 중에는 정직한 사람이 많다”라는 문항과 “우리나라 정치가 중에도 정직한 사람이 많다”는 문항으로 찬반을 물었다. 두 문항의 차이는 토씨 하나(‘는’과 ‘도’)였지만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리얼미터는 특히 두 번째 조사에서 문 대통령을 등장시켰다. 리얼미터는 “행위(임명)의 주체를 넣는 것이 질문의 의도에 맞는 타당한 구성”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 이름 하나 들어가는 게 응답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첫 번째 조사는 순수하게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조사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묻는 것이기에 정파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걸 갖고 ‘여론이 변했다’라고 단정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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