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amily] 조기유학 향수병 ? 우리 가락이 약이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국악기 중에서 해금은 또렷하면서도 구수한 음색으로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해금 전문 교습소‘이현(二絃)의 사랑’에서 해금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 김성룡 기자

# 외국 유학의 필수 코스

내년에 미국 LA의 한 공립고에 진학할 예정인 강남 S중 김모(15)군은 지난 겨울방학에 이어 이번 여름방학 때 집 근처의 국악교습소에 등록할 예정이다. 학교 성적뿐 아니라 사회봉사.대외활동 등 인성(人性)을 중요시하는 외국 학교 진학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아이비리그 등 미국의 명문대에서는 체육이나 예능 방면의 활동성을 입학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야금이나 단소.해금.대금 등 국악기를 다루는 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출신 학생이 서양악기인 피아노.바이올린.첼로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경쟁력이 별로 없다.

최근 강남에 부는 국악 교습 열풍의 진원지는 민족사관고. 이 학교는 이미 전교생들에게 개량 한복을 입히고 태권도와 국궁, 국악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외국 유학 생활 틈틈이 국악기를 연주함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스트레스 달래 주는 벗

국악기를 배우는 것은 외국 학교 입학 심사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국악기는 고단한 유학 생활에서 겪기 쉬운 스트레스와 향수병을 달래 주는 '좋은 친구'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과 경기도 안양시.안산시에 있는 국악학원'국악의 향기(www.ilovegugak.co.kr)' 박상영 원장은 "조기 유학을 떠나기 전 몇몇 학생이 해금을 배워 갔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친척 집에서 공립학교에 다니는 박주영(15)군은 방학 때마다 귀국해 '국악의 향기'에서 해금을 배우고 있다. 3년 전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배우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엔 아직 유색인종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데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박군은 백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다. 오후 3시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각종 파티나 행사가 많다. 행사에 나가 해금 연주로 주목받을 수도 있지만 성격 탓에 혼자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해금을 연주하면서 낯선 곳에서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라는 것이다.

# 치솟는 해금의 인기

서울 반포 4동에 있는 해금 교습소'이현(二絃)의 사랑'에는 음대 국악과에 진학하려는 전공 학생뿐 아니라 취미로 배우려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국악기를 전공하다가 해금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부산예고에서 국악 타악을 전공한 이혜진(20)양, 사물놀이를 연주하다가 해금 활을 잡은 김승태(국립국악고 1년.16)군의 경우다.

정수년.꽃별 등 스타급 연주자들의 눈부신 활동 덕분에 젊은 작곡가들의 신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해금은 지속음을 낼 수 있는 선율 악기라 드라마나 영화의 테마 음악에 자주 등장한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워 듣는 이의 심금(心琴)을 파고드는 매력을 지녔다. 특히 바이올린을 다뤘던 사람은 해금을 더욱 수월하게 배울 수 있다. 성인 대상으로 국악 강좌를 열고 있는 국립국악원 국악진흥회의 이석규씨는 "가야금과 사물놀이에 이어 최근 해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해금 주자 윤문숙(45)씨는 "해금만큼 순박하고 푸근한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내는 악기는 없다"며 "굳이 개량을 하지 않더라도 맑고 명료한 소리를 내는 데다 서양음악과도 잘 어울려 인기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줄만으로 다양한 음들을 만들어 내고 명주실에서 나는 독특한 날숨소리 같은 음색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왠지 외로워 보이는 해금의 음색은 현대인의 감성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해금은 낯설고 물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학생들의 심정을 달래 주는 악기로 제격이다.

국악 교습 관련 정보는 아동국악교육협회(www.ikukak.com). 국립국악원 사이버 국악교육(www.guakedu.go.kr), 국악전문 방문 교육(www.dansoya.com)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