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30평대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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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아파트 시장에서 30평형대 이하 중소형은 몸값이 올라간 반면 4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인기는 한물간 것 같다.

새 아파트 청약에서 30평형대를 중심으로 중소형은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반면 40~50평형대는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기존 아파트 시장에서도 30평형대 매매가 상승률이 가장 높다.

'똑똑한 한 채'(중대형 평형)를 선호하던 올초까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출 억제 등 집값이 6억원이 넘는 중대형 아파트에 각종 규제가 집중되면서 나타난 트렌드로 풀이된다.

◆인기 평형대 역전현상 뚜렷=지난달 26~28일 청약접수를 한 경기도 용인 공세지구 대주피오레 단지의 경우 38평형만이 1순위에서 2.1대 1로 청약을 마감했을 뿐 40평형대 이상 아파트는 70%가량 미달됐다. 같은 때 청약신청을 받은 서울 중구 황학동 롯데캐슬 단지도 중소형 경쟁률은 10대1을 웃돌았으나 45평형은 2.6대1을 기록하는 데 그쳐 중대형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음을 보여줬다.

대주건설 김요식 분양소장은 "견본주택을 방문한 수요자들 중 투기지역 내 분양가 6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해 적용되는 중도금 대출 규제와 종부세 부담 때문에 발걸음을 돌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3.30대책 이후 투기지역 내 6억원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 받을 수 있는 중도금 대출금이 분양가의 60%선에서 20%선으로 크게 낮아졌고 그나마 기존 대출이 있는 경우는 사실상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게 중대형 분양시장에 직격탄이 된 셈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청약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도 중대형 몸값을 낮춘 요인이다. 중대형 미분양이 50%를 웃도는 대구시 수성구에서 분양한 업체 관계자는 "올초만 해도 중대형을 분양받으면 웃돈을 챙길 수 있다는 투자심리가 살아있었고 업체들도 '중대형 불패'를 대세로 여겼다"며 "그러나 3.30대책 이후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대출을 통해 큰 평수를 분양받으려는 수요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기존아파트 매매시장에서도 30평형대 아파트 선호현상이 두드러진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 조사에 따르면 서울 25개 구 가운데 올 들어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양천구의 경우 30평형대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양천구 30평형대 매매값은 상반기에만 30.1% 올라 40평형대(27.6%)와 50평형대(24.4%)의 상승률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형아파트의 상승률이 30평형대보다 훨씬 높았다.

경기도 용인 성복동 L부동산 관계자는 "시세보다 1억원을 낮춰 나온 63평형 급매물이 석 달째 안 팔리고 있다"며 "30평형대는 그나마 거래가 이뤄지지만 대형 평형에는 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양공인 김종현 부장은 "30평형대에서 40평형대로 옮기려던 기존 강남권 주민들이 '평수 넓히기'를 일단 포기하고 30평형대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고 신규 진입 수요도 금융비용과 세금 때문에 40평형대 매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대형 수요는 일시 위축됐을 뿐"=전문가들은 30평형대 선호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대출 규제로 인기지역 중대형 아파트를 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데다 세금부담이 현실화되면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며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심리적 위축현상이 올 연말까지는 중대형 아파트의 수요를 제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심리적 조정기'를 거친 뒤에는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높아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한투자증권 이준규 부동산운용팀장은 "최근의 30평형대 쏠림 현상은 각종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일시적인 움직임"이라며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중대형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는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예상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부사장은 "중대형 수요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움츠려있을 뿐"이라며 "어차피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기지역 중대형의 희소가치는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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