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스콜라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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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4월 잉글랜드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잉글랜드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던 인물이 포르투갈 감독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사진)였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 제안을 수락한다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와 붙게 됐을 때 내가 어떻게 우리 선수들에게 사력을 다하라고 독려할 수 있겠는가."

그의 '예언 아닌 예언'은 적중해 포르투갈과 잉글랜드는 독일 월드컵 8강전에서 맞붙었고 포르투갈은 승부차기로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올랐다. 승부차기에서 세 차례의 선방으로 포르투갈 승리의 일등공신이 된 골키퍼 히카르두는 "스콜라리 감독은 최고의 감독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최고"라며 존경심을 표시했다.

스콜라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7연승을 거두며 조국 브라질의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독일 월드컵에선 40년 만에 포르투갈을 월드컵 4강으로 끌어올렸다. 전인미답의 월드컵 12연승이다. 네덜란드(98년)-한국(2002년)-호주(2006년) 등 각각 다른 팀을 16강 이상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와 더불어 독일 월드컵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린 감독이 됐다.

스콜라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규율'이다. 브라질 감독 시절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청한 호마리우의 대표팀 발탁을 끝내 거부했다. '팀워크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투철한 규율과 강한 승부근성으로 스콜라리는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직전의 브라질을 맡아 우승으로까지 이끌었다.

한.일 월드컵 이후 포르투갈 지휘봉을 잡은 스콜라리는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포르투갈 축구의 '르네상스'를 이끈 후이 코스타.세르지우 콘세이상.주앙 핀투 등 이른바 '황금세대'들이 차례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루이스 피구만 남았다. 대신 히카르두 카르발류.누누 발렌트.미겔 등 재능있는 수비수들을 발굴해 팀을 재조직했다. '카데나치오'(빗장수비)의 창시자 헬레니오 헤레라 전 인터 밀란 감독을 존경하는 스콜라리는 철통 같은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세대 교체의 정점은 데쿠의 영입이다. 2003년 브라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데쿠를 귀화시키려 하자 주장인 피구가 "외국인 선수까지 데려올 정도로 포르투갈이 약한 팀이냐"는 불평을 터뜨렸다. 하지만 스콜라리는 데쿠를 공격의 축으로 활용하며 2004 유럽선수권 준우승을 이끌었다. '데쿠 의존(Deco-dependencia)'이라는 말이 포르투갈 언론에 등장할 정도로 현재 포르투갈팀은 데쿠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현재 스콜라리의 주가는 '상한가'다. 독일 월드컵과 함께 계약이 끝나는 스콜라리를 데려오기 위해 잉글랜드뿐 아니라 브라질도 나섰다. 포르투갈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질베르투 마다일 축구협회장이 독일에 머무르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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