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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199위 추락, 머리숱 듬성듬성 우즈의 위대한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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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두 팔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우즈. 그는 메이저 최다승(18승), PGA 통산 최다승(82승) 기록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로이터=연합뉴스]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두 팔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우즈. 그는 메이저 최다승(18승), PGA 통산 최다승(82승) 기록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로이터=연합뉴스]

붉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4·미국)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가 모자를 벗자 머리숱이 듬성듬성 빠진 중년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주름 팬 골프 황제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그의 기량만큼은 녹슬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마스터스에서 다섯 번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5년 이후 14년 만이다.

14년 만에 다섯 번째 마스터스 챔프 #이혼 뒤 수술·약물 악몽의 연속 #아들·딸 보며 마음 잡아 황제 복귀 #트럼프도 오바마도 “투지 보여줬다”

15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최종 4라운드. 18번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마친 우즈는 두 팔을 치켜들고 포효했다. 그는 8년간 함께 호흡을 맞춘 캐디 조 라카바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 뒤 그린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 찰리(10), 어머니 쿨티다(74), 딸 샘(12)에게 걸어갔다. 여자친구 에리카 허먼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섯 번째 그린 재킷을 입은 우즈는 “이 나이에 우승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그린 재킷이 정말 편하다”고 말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4년 만에 마스터스 정상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우즈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우승 직후 우즈가 아들 찰리를 꼭 껴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ESPN]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4년 만에 마스터스 정상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우즈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우승 직후 우즈가 아들 찰리를 꼭 껴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ES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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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7·이탈리아)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4라운드를 시작한 우즈는 오거스타의 악명 높은 아멘코너(11~13번홀)를 힘겹게 넘은 뒤 15, 16번홀 연속 버디로 역전에 성공했다. 결국 마지막 날 2타를 줄인 끝에 합계 13언더파로 우승했다.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잰더 쇼플리(이상 미국·12언더파) 등 공동 2위 그룹을 1타 차로 따돌린 우즈는 우승상금 207만 달러(약 23억5000만원)를 받았다. 메이저 대회로는 2008년 US오픈 이후 11년 만의 우승이다. 그는 또 PGA 투어 통산 81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82승·샘 스니드)에도 1승 차로 다가섰다. 우즈는 “마지막 퍼트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우승자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입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마스터스 우승자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입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골프 황제’이자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불리던 우즈는 최근 10년 동안 급격하게 몰락했다. 2009년 11월 섹스 스캔들이 터졌고, 이듬해 스웨덴 출신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과 이혼했다. 2014년부터 3년간 네 차례나 허리 수술을 받았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운전하다 정신을 잃어 경찰에 체포돼 조사도 받았다. 우즈는 제대로 걷지도, 눕지도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골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부동의 1위였던 그의 세계랭킹은 2017년 11월, 1199위까지 추락했다.

1997년 처음으로 마스터스 정상에 오른 뒤 아버지 얼 우즈를 꼭 껴안은 우즈. [사진 ESPN]

1997년 처음으로 마스터스 정상에 오른 뒤 아버지 얼 우즈를 꼭 껴안은 우즈. [사진 ESPN]

우즈를 일으켜세운 건 가족이었다. 우즈는 2007, 2009년에 낳은 딸 샘과 아들 찰리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수술한 뒤 샘, 찰리와 낚시를 하거나 스포츠 경기 관람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우즈는 여유를 되찾았다.

두 아이를 안은 우즈의 모습은 1997년 첫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의 사진과 묘하게 대비가 됐다. 골프채널, ESPN 등은 심장병 수술을 받은 뒤 힘겹게 대회장을 찾았던 아버지 얼 우즈와 포옹하던 우즈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아버지 얼 우즈는 2006년 세상을 떠났지만 할머니가 된 어머니 쿨티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즈를 꼭 안아줬다. 우즈는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어머니와 아이들이 이 자리에 있다. 가족의 사랑과 지지는 내가 일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마스터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타이거 우즈. [AFP=연합뉴스]

마스터스가 우즈의 역전승으로 막을 내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진정 위대한 챔피언”이라고 치하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탁월함, 투지, 끈기를 보여줬다”며 찬사를 보냈다. 1년5개월 전, 1199위로 추락했던 우즈의 세계랭킹은 마스터스 우승으로 6위까지 올랐다. 2014년 11월 이후 첫 세계 톱10이다.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갖고 있는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79)는 “우즈가 나를 압박하고 있다. 골프를 위해 행복한 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김지한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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