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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라는 걸 입증한 아베노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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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잃어버린 20년’ 탈출한 일본 경제 

세계 경제 전망 4/15

세계 경제 전망 4/15

세계 경제가 둔화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미국·유럽연합·중국에 비하면 안정적이다. 오랜 저성장 기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체질이 강화돼 있고, 고용도 완전고용에 가깝다. 이는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安倍晋三) 총리는 벌써 3연임을 넘어 4연임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하면서 2021년 9월까지 총리 재임이 가능해져 내년 8월 24일이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의 기록(재임일 2798일)을 깨고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나아가 4연임에 성공하면 아베는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에 오르게 된다. 모두 아베노믹스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바보야! 문제는 경제’란 진리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 경제 일제히 뒷걸음질쳐 불안 #일본 구조개혁으로 경제 흐름 안정 #성장전략 먹히자 경제 활력 살아나 #일왕 즉위에 올림픽까지 호재 봇물

일본 경제가 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지는 세계 경제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자금의 흐름이다. 세계 주요 투자자들은 올 들어 시간이 갈수록 리스크 회피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둔화 신호음이 갈수록 커지면서다. 돈 냄새를 잘 맡는 국제 금융시장의 큰손들은 지난달부터 주식 같은 위험자산을 줄이고 국채 같은 안전자산으로 도피하는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글로벌 채권 시장의 흐름이다. 지난달 주요국의 ‘수익률 곡선’은 일제히 우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익률 곡선은 통상 3개월 만기 국채와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를 나타낸다. 경기가 좋을 때는 미래의 자금 수요가 넘치면서 만기가 길수록 금리도 높아진다. 이 같은 ‘단저장고’(短低長高)가 최근 뒤집히고 있다. 비관적 경제 전망이 늘어나면서 금리역전(단고장저)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에 맞춰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즉각 금리 인상 기조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난달 20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오는 9월에는 양적긴축(QT) 정책을 종료한다. 오히려 연내 금리를 한 차례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올 만큼 미 경기의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도 올해를 기점으로 고도성장이 막을 내리고 6% 성장도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 유럽 역시 영국이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의 수렁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것도 모자라 독일의 성장률이 1%대 아래로 추락하는 등 경제의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경제가 계속 뒤뚱거리고 있다.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경제는 견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주요 7개국(G7) 모두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했지만, 한국은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한국 경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비상등이 켜졌다. 구조개혁은 모두 덮어두고 전대미문의 소득주도 성장이 시작되면서 고용참사와 소득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 경제는 괄목할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만성적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는 선진국은 물론 한국보다 좋을 것도 없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0.8%)보다 개선된 1%로 상승할 전망이다. 미세한 추세지만 일본 경제가 적어도 무기력에서 벗어났다는 신호로 풀이할 수 있다. 일자리 풍년에 대해서는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구인배율은 1.6배에 달한다. 취업 기회가 많아져 기업들은 이직 방지를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낼 지경이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중소기업에선 버티다 못해 문을 닫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일본 경제의 체질 강화에서 비롯된다.

그 출발은 만 5년 전 본격화된 아베노믹스가 쏘아 올린 세 개의 화살이다. 첫째 화살은 2013년 4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이인삼각으로 시작한 ‘금융완화 정책’이다. 제로금리를 통해 시중에 자금을 무제한으로 풀어 미 달러화 대비 엔화값을 떨어뜨렸다. 디플레이션 수출에 따른 ‘이웃나라 가난뱅이 만들기’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이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애초 기술력은 있었으니 일본 기업들은 환율을 날개로 달고 빠르게 경영성과를 회복시켜 나갔다. 주가(닛케이225)는 지난 5년 사이 2.5배 가깝게 상승했다.

둘째 화살은 ‘팽창적 재정정책’이었다. 일 정부는 정부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했다. 2019년 회계연도(올 4월~내년 3월) 예산은 처음으로 100조 엔을 넘어선다. 하지만 재정을 도로·항만에 쏟아부었던 ‘잃어버린 20년’ 때와 달리 아베노믹스에선 셋째 화살 ‘성장전략’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금융완화와 재정확장은 결국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마중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필요한 인적자원 개발 육성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저출산을 막는 동시에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1억 총활약상(相·장관)’부터 신설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돌봄 아동 인원을 50만 명이나 늘리고 육아 휴직 수당도 대폭 확충하는 것은 물론 여성의 커리어 성공을 지원하는 기업에는 ‘나데시코’ 마크를 붙여줬다. 나데시코는 일본의 들꽃으로 끈기 있는 일본 여성의 상징이다. 머지않아 효과가 나타났다. 아베노믹스 시행 3년 만에 여성 신규 취업자가 150만 명 늘어나면서다. 민간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10%까지 뛰었다. “저출산·고령화를 역으로 활용하자”는 정책의 구체적 실천 결과다.

성장전략의 둘째 수단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었다. 아베는 이 업무 역시 1억 총활약상과 마찬가지로 일개 부처에 맡기지 않고 내각 전체가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했다. 저출산 속도를 늦추고 미래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려면 국가의 총력 태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지역별로 차등화하고 업종별로 탄력근로제를 확충해 기업들이 마음껏 일하도록 했다. 법인세는 37%에서 29%대로 떨어뜨려 해외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리쇼어링(귀환)을 지원했다. 이런 정책은 모두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대응이 가능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적자원 강화 조치였다.

아베노믹스는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슬로건으로 ‘미래의 성장을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미래의 튼튼한 일본을 위해’를 내걸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발휘하는 힘도 크다. 일본 정부는 매년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해 공표한다. 기업들은 이런 비전 하에 제품 개발과 인재 육성, 시장 개척에만 전념하면 된다.

일본은 마침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하고 장남 나루히토(德仁)가 즉위하는 내달 1일  연호를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꾸면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고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 걱정도 없는 데다 기성세대 역시 2013년부터 본인이 원하면 정년이 65세로 연장됨에 따라 노후 걱정이 줄어들게 되면서 경제 전반의 역동성까지 살아나고 있다. 게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이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도쿄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경제 활력의 지렛대로 삼아왔다.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을 통해 활력을 되찾은 일본의 분위기와 함께 수소전기차·5세대(5G) 이동통신을 비롯해 일본의 앞선 기술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해 없는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관광산업도 궤도에 올랐다. 아베가 직접 컨트롤타워를 맡아 사후면세점을 확대하고 숙박·교통 인프라를 확충해 지난해 3119만명(한국 1534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데 이어 내년에는 4000만 명, 2030년에는 6000만 명으로 늘려나가 일본을 프랑스·스페인·미국 같은 관광대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률이 높지만 생산성과 함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갈 길이 멀다. 세계적 공급과잉 현상이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만큼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일본의 큰 시장인 중국 경제의 둔화도 아베노믹스의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내다봤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제 기반의 침하를 막고 산업의 역동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이 아니라 벤처 창업을 지향하게 됐다는 점에서도 미래가 밝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