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레저터치
지난주 말레이시아에 있었다. 거기에서 TV에서나 보던 ‘혐오 음식’을 먹었다. 애벌레 회와 애벌레 초밥.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횟감이었고, 초밥에 얹은 애벌레는 일식의 타다키(たたき)처럼 겉을 살짝 구운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애벌레 요리는 흔한 음식이 아니다. 해발 4095m 키나발루 산자락의 원주민 카다잔두순(Kadazandusun)족의 전통 음식이다. 카다잔두순족도 지금은 거의 애벌레 요리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 여행자가 굳이 맛을 본 건,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이 음식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고산족의 애벌레 요리를 경험한 곳은 깊은 산속도, 후미진 시장도 아니었다. 대도시 코타키나발루의 번화가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연신 도는 현대식 건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 괴이한 요리를 체험했다. 카다잔두순족의 문화를 담은 글과 사진으로 실내를 장식한 식당에서 애벌레는 일식 메뉴처럼 꾸며져 다른 전통 음식과 함께 서비스됐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 말레이시아를 오해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관광산업을 은연중에 깔보고 있었다. 외국인이 뿌리는 달러가 탐나 스스로 제 강산을 파헤치고, 환대라는 명목으로 간 쓸개 다 빼주려는 꼴이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의 관광정책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 식당에서는 아니었다. 나는 식당 직원들의 미소에서 자부심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태도’가 관광 선진국의 자세라고 나는 믿는다. 남에게 잘 보이겠다고 남을 흉내 내는 건 관광 후진국의 행동이고. 나는 관광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제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러운가. 우리에겐 외국인에게 산낙지를 권할 용기가 있는가.
귀국하고 보니 제3차 국가관광전략회의가 끝난 다음이었다. 대통령이 처음 참석했다는 전략회의의 보도자료는 ‘2022년까지 외래관광객 2300만 명 이룬다’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작년 외래관광객 숫자가 1535만 명이니까 4년 안에 현재 방한 시장의 약 50%를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외국인만 많이 오면 장땡이란 뜻인가? 문재인 정부가 처음 숫자로 명시한 관광산업의 목표는 영 난데없었다. 참, 애벌레 회 맛은, 음… 양념 안 밴 번데기랑 비슷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