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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억 투자 따낸 IQ157 교수가 말하는 한국 벤처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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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의 직격 인터뷰] 뇌 질환 진단 새 지평 연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 

이진형 교수는 스탠퍼드대 교수이면서 벤처 기업가다. 그의 벤처에 투자한 KB인베스트먼트 측은 ’벤처가 확보할 뇌 신경 데이터만도 가치가 크다“라고 했다. [우상조 기자]

이진형 교수는 스탠퍼드대 교수이면서 벤처 기업가다. 그의 벤처에 투자한 KB인베스트먼트 측은 ’벤처가 확보할 뇌 신경 데이터만도 가치가 크다“라고 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갔다. 그러곤 스탠퍼드대 최초의 한국인 여성 교수(생명과학부)가 됐다. 연구를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에 뇌 질환 관련 벤처를 차렸다. 지난해 말 한국 법인을 설립했고, 국내에서 KB인베스트먼트·SK㈜ 등으로부터 170억원 투자를 받았다. 이진형 교수(나이는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법인 일 때문에 최근 한국에 들른 그를 만났다. 그는 “스마트폰 전자 회로 다루듯 뇌 회로를 다뤄 뇌 질환을 진단하고 고치는 게 연구의 목표이자 벤처의 목표”라고 말했다.

“젊은이들, 좋은 직장 경쟁보다 #사회의 솔루션 되려 노력해야 #그걸 북돋는 게 벤처 문화의 기반” #IQ 157 스탠퍼드대 종신 교수 #뇌 신경계 들여다보는 기술 개발 #벤처 세워 170억원 투자 유치도

전자 회로 다루듯 뇌를 다룬다는 말, 잡힐 듯 안 잡힌다.
“휴대전화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전문가가 회로 들여다보고 여기저기 테스트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판단해 고친다. 뇌 질환은 어떤가. 대부분 상담만 한다. 회로를 열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휴대전화기를 쳐다보면서 얘기하는 거다. 그러니 뭐가 잘못됐는지 정확히 진단할 수 없고, 그래서 못 고친다. 상담이 아니라 실제로 뇌 신경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진단과 치료를 해야 한다.”
전자회로는 각각의 칩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뇌는 수많은 뉴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걸 전자회로처럼 분석하는 게 가능한가.
“우선 뇌세포 종류별로 각각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동시에 세포 하나하나가 뇌 전체 네트워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사실 종전엔 뇌세포 각각의 기능과 뇌 전체의 움직임을 함께 보지 않고 따로 관찰했다. 그 두 극단을 융합해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그게 내가 연구해 실용화한 거다.”
실제 뇌 질환에 응용하는 단계인가.
“뇌전증(간질)에 대해서는 뇌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뇌전증과 뇌 특정 부위의 연관성을 밝혔다는 것처럼 들린다.
“뇌전증은 원인과 증상이 제각각이다. 이 환자는 뇌의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저 환자는 또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내야 맞춤 치료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환자별로 다른 이상 부위를 가려낼 수 있는 단계에 왔다.”
전기공학도가 뇌과학자가 됐다.
“원래 뇌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문제와 씨름하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갑자기 풀이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대체 뇌가 학습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전공은 왜….
“당시에 전자공학이 인기라…. 전기공학부는 예전 전자·전기·제어계측학과가 합쳐 생긴 것이었다.”
뇌과학으로 바꾼 계기는.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 때 의공학을 했다. MRI 이미징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기공학의 한 분야다. 박사 졸업할 무렵 외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뇌 혈관 하나 터진 건데 재활 치료밖에 못 하고 알아서 낫기를 기다렸다.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뇌과학 관련 세미나에 갔다가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다. 그간 연구한 분야와도 관련됐다. 미국 정부에 제안서를 냈더니 연구비가 나왔다.”
벤처 ‘엘비스(LVIS)’까지 차렸다.
“천성적으로 문제 해결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연구만 해놓고 끝내는 건 ‘누군가가 현실에 적용해 보라’고 또 다른 문제만 던지는 것 같았다. 그걸 내가 직접 하는 거다.”
스탠퍼드대는 창업 천국이라는데.
“주변에 창업 안 한 교수가 거의 없다.”
한국은 다르다. ‘교수 월급 받으면서 벤처에서 또 돈 받느냐’ ‘벤처 때문에 수업을 덜 해 다른 교수가 가르치는 부담을 떠안는다’는 등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교수는 특정 분야의 지식 리더다. 교수가 창업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을 사회에서 활용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스탠퍼드대는 학생들에게까지 그런 인식이 박혀 있다. 학교는 교수 창업에 투자해 돈을 번다. 그걸로 더 많은 교수 채용하면 수업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이 생겨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다.”
대학에서 창업 지원을 많이 하나.
“예컨대 1주일에 몇 시간은 학교 외 일에 쓸 수 있다는 등 창업을 위한 제도는 마련돼 있다. 그렇다고 등 떠밀어가면서 도와주는 건 아니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벤처 운영이)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한국에 법인을 세웠다.
“연구개발(R&D)을 주로 한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다. 직접 고용할 수도 있고, 훌륭한 의사들과 협력할 수도 있다. 의사들과 협력해 우리나라 환자들을 도울 수도 있겠고….”
국내에서 벤처 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이 교수는 조심스러운 듯, 이 대목에서 좀 머뭇거렸다.)그게…. 회사 통장 만드는 데만도 서류가 잔뜩이었다. 은행에서 내준 법인 신용카드는 또…. 두 장 합쳐 한도가 월 200만원이다. 은행에서 그 이상 안 된다고 했다.”
180억 투자받은 벤처라고 얘기했나.
“그냥 한도 늘릴 방법을 물었더니 ‘신규 법인은 안된다’고만 하더라. 유연하지 않다. 미국은 무엇이든 하게 하는데…. 좋고 나쁨을 떠나 다르다고 느꼈다.”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도 많다.
“벤처가 성공하는 건 기적에 가깝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 안 하는 직원 해고를 못 한다. 노동법에 유연성이 떨어진다. 주 52시간 근무도 그렇다. 그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많이 보상해줄 수 있는 구조여야 하지 않겠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일하게 하는 건 인력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벤처 지원 제도는 어떤가.
“고급 인재를 모셔오려면 높은 임금을 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곳은 잘 지원하지 않는다. 보통 일정 임금 기준 이하가 지원 대상이다. ‘좋은 벤처’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노동법 말고도 규제가 많을 텐데.
“한국에 와서 의사들과 얘기해보니 제도 때문에 신기술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한국 환자들이 기술의 혜택을 볼 확률이 줄어든다.”
한국은 지금 규제가 화두다. 대통령이 ‘붉은 깃발 규제를 뿌리 뽑겠다’고 하는데도 잘 안 된다.
“‘뒤처지지 말자’가 아니라 ‘1등 하자’는 생각, ‘선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위험 요소는 규제해야겠지만 새로운 기술은 최대한 빨리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창업이 많이 이뤄지고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전하는 환경이다. 경쟁력 있는 인재는 그런 사회에 매력을 느낀다. 규제도 많고 벤처 운영하기도 복잡하면 누가 오겠나. 사람뿐 아니라 국제적인 기업들이 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싶어해야 고임금 일자리가 많아진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들도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들었다. 모두가 하려는 기회(좋은 직장)만 놓고 경쟁할 게 아니다. 세상엔 풀어야 할 문제가 똑똑한 사람보다 많다. 그런 문제를 찾아 자신이 세상의 솔루션이 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그걸 북돋워 주는 게 스타트업 문화의 기반이다.” 

이진형 교수의 공부법?

이진형 교수

이진형 교수

이진형 교수와의 인터뷰 내내 예전 신문 기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학입학 수석들은 공부 방법에 대해 하나같이 “교과서 위주로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어땠을까.

공부 잘했던 비결이 뭔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원리를 파악하면 된다.”
수학·과학은 그렇겠지만, 암기 과목은 다를 텐데.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역사는 흐름과 맥락이 있지 않나. 그걸 이해하면 외우기도 쉽다.”

괜히 물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 교수는 과학고를 갈 때도, 전기공학이라는 전공을 택할 때도 “여자가 왜 그런 걸”이라는 주위 반응을 접했다고 했다. 대학 시절 우연히 친구 따라 멘사 시험을 봤다가 IQ 157이 나와 회원이 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는 ‘신(新) 혁신가상’(2010년), 알츠하이머협회 ‘신진 연구자상’(2013년), 한국라이나전성기재단이 노후 생활 관련한 우수 연구자에게 주는 ‘라이나 50+ 어워즈’(2018년) 등을 받았다. 초·중·고·대학·박사과정까지 직속 후배인 남동생(이제형씨)도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를 차렸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