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모자를 바꾸어 쓴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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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진규(1939~ ) '모자를 바꾸어 쓴 날'전문

슬픔의 중량 한 술 덜어냈다 다이어트를 좀 했다 슬픔의, 청승살이 좀 내렸다 때절은 모자보다 한결 가볍고 따뜻했다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보다 따뜻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젠 슬픔을 좀 알았다 할 만했다 겹겹이 껴입지말 일이다 금방 내보일 수 있어야지



무거운 모자를 벗고 가벼운 모자를 바꾸어 쓰니 더 따뜻하다고 한다. 그러나 '무거운 모자'라는 것을 명예나 부귀를 이르는 감투들, 또는 세상적인 욕심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삶의 여러 욕심들을 좀 덜어내니 비록 읽은 것, 포기한 것 때문에 슬픔 같은 것을 조금 느끼기는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더라는 말. 맨 끝줄 '금방 내보일 수 있어야 할'그 대상은 누군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겠다.

마종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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