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김정은 움직일 ‘굿 이너프 딜’ 트럼프 설득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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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호 08면

지난해 9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비핵화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올인하고 있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을 오는 10~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10~11일 워싱턴서 한·미 정상회담 #김현종 “개성·금강산, 정상 간 협의” #영변 핵 폐기-남북 경협 맞교환 희망 #트럼프·김정은 북·미 정상회담처럼 #한·미도 ‘톱다운’ 방식 협상 모색 #미국선 반대 많지만 변수는 트럼프

최근 정상회담 의제 협의를 위해 방미했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발언만으론 아직 예측이 쉽지 않다. 찰스 쿠퍼먼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 등을 만난 뒤 5일 새벽 귀국한 김 차장은 공항에서 “다음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며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end state)’나 로드맵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에 균열이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는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결렬에 이르게 한 핵심 이견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더욱 불신하게 됐다. 이런 쟁점을 놓고 한·미가 의견 일치를 봤다는 것은 일단 한·미 공조엔 긍정적 신호이자 북한엔 적신호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인 제재 완화 또는 해제와 관련해 최근 정부 안팎에선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 움직임을 볼 때 어떤 형태로든 제재 완화 또는 해제가 미국의 상응조치에 포함되지 않고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오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차장은 이날 공항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전혀 언급이 없었다”면서도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정상들 사이에 좀 더 심도 있게 얘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무선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벌일 예정이란 얘기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뉴시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뉴시스]

공교롭게도 미국을 향한 제재 완화 설득 움직임은 김 차장 외에도 정부 핵심 인사들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지난 4일 세미나에서 “김 위원장을 설득하려면 문 대통령에게 레버리지(지렛대)가 있어야 하는데, 남북한 경제 교류와 협력 분야에서 유연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주는 게 한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군불을 땠다. 영변 핵시설의 검증 가능한 폐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의 부분 완화를 맞교환하는 방안이 ‘굿딜’이라면 ‘굿 이너프 딜’은 상응조치 중 하나로 유엔 제재의 부분 완화 대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이날 같은 세미나에서 제재 카드를 거론했다. 이 본부장은 “제재는 북한이 나쁜 결정을 하는 것을 막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상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의 최종 해결이라는 ‘방’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도 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제재 만능론’에 견제구를 날리는 발언이었다.

이 본부장은 그러면서 협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기 성과 수확(early harvest)’의 중요성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일단 협상이 재개되면 결과가 크든 작든 협상 회의론을 차단하기 위해 빠르고 연속적으로(fast and successively)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기왕에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검증을 조기에 수확하기 위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써보자며 미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정부의 ‘굿 이너프 딜’ 구상에 대해 한·미 양국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론 하노이 회담 합의 결렬이라는 상황 변화는 있었지만 미국은 회담 이전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에 부정적이었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실무협상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이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전직 외교 고위관리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이 취한 방식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톱다운 방식으로 ‘굿 이너프 딜’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 넣을 것으로 보인다”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카드를 활용하자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 미국 내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세현·이유정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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