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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진해가 아니어도 좋다, 난 벚꽃 보러 여의도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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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11)

이번 주 벚꽃의 아름다움은 절정을 맞을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여의도라도 가보기로 했다. [사진 unsplash]

이번 주 벚꽃의 아름다움은 절정을 맞을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여의도라도 가보기로 했다. [사진 unsplash]

“쌍계사 다녀왔어요. 벚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설레는 게…” 주말 전에 휴가를 낸 후배에게 여행이라도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벚꽃 축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4월, 꽃들이 만개할 때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 리 벚꽃 길을 친구들과 함께 느릿느릿 걸었을 후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활짝 핀 하얀 꽃망울을 연신 사진에 담으며 말이다.

이번 주부터 인가. 신문 1면에 꽃 사진이 등장했다. 진해 군항제가 시작됐다는 소식도 들리고 여의도 벚꽃 축제를 기대하라는 전언도 있다. 팝콘처럼 터지는 벚꽃 사이로 가족들의, 연인들의, 친구들의 웃음이 걸리는 때다. 봄은 이렇게 색으로 시작된다.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와 연산홍이 피고, 그렇게 온천지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두꺼운 나무 거죽 사이로 연초록 새순들이 돋기 시작하고 얇은 잎사귀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지난 주말에는 동네 뒷산인 응봉산에 개나리 축제가 열렸다. 큰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출사객들과 삼삼오오 등산에 나선 상춘객들로 동네 입구가 들썩였다. 얇은 가지 위로 두세 개 꽃망울을 본 것이 얼마 전이었는데, 언덕 전체가 노랗게 변해있었다. 아, 봄이구나.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응봉산 개나리(왼쪽). 지난 3월 29일~31일,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개나리 축제가 열렸다. 지역 신문은 이 기간에 3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했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개화의 과정(오른쪽). 나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 김현주]

응봉산 개나리(왼쪽). 지난 3월 29일~31일,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개나리 축제가 열렸다. 지역 신문은 이 기간에 3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했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개화의 과정(오른쪽). 나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 김현주]

한번은 보았던 듯도 해라
황홀하게 자지라드는
저 현기증과 아우성 소리
내 목숨 샛노란 병아리떼 되어 순결한 입술로 짹짹거릴 때
그때쯤 한번은
우리 만났던 듯도 해라

몇 날 몇 밤을 그대
눈 흡떠 기다렸을 것이나
어쩔거나
그리운 얼굴 보이지 않으니

4월 하늘
현기증 나는 비수로다
그대 아뜩한 절망의 유혹을 이기고
내가 가리
-김사인, 개나리, 『밤에 쓰는 편지』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 겨울을 지나 맞이한 황홀한 기대의 순간! 김사인 시인 역시 ‘개나리’를 보며 이런 봄을 느끼지 않았을까. 10여 년 전이었다. 남산 소월길로 출근했던 때다. 30대였다. 산자락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며 계절을 가늠했었는데, 봄의 색은 4계절 중 가장 다채로웠다.

‘오, 봄이다! 나무에 이런 색이 오르다니, 너무 예쁘지 않니~’ 봄만 되면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난 이 얄상한 연두색보다 짙은 초록이 좋은데. 봄보다는 신록의 여름이지! 쭉쭉 뻗는 느낌이 나잖아. 혹시 모르지. 엄마 나이가 되면 여린 새순과 꽃잎의 색이 더 좋아질 수도.’

20대 때는 이런 말도 했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 나의 가장 빛나는 때가 바로 지금일 테니, 후회 없게 살아보려고!” 흐드러지게 핀 교정 진달래 화단 앞에서 친구들과 모여 호기롭게 외치곤 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리만큼 대담했다. 꽃은 피고 진다. 물론 피어있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다시 봄이 오면 그 찬란한 색을 기어코 보여준다는 걸 그때는 놓치고 있었다.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고, 그 안에서 가끔 맞게 되는 어떤 순간을 축복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나는 ‘색깔 가득한 봄’이 좋다. 추위 뒤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거기에 맞춰 벌어지는 색의 향연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그 시간을 기쁘게 맞고, 그 기운으로 다시 한 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대학 교정에 가득 피었던 진달래. [사진 unsplash]

대학 교정에 가득 피었던 진달래. [사진 unsplash]

꽃 든 자리
꽃 나간 자리

아득한
어두운

여보세요
불 좀 껴주세요

환해서
잠 안 오네요
- 허수경, 언덕 잠(봄),『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시인처럼 두근거리며 맞는 봄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이만큼 더 설렌다.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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