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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나랏빚 940조원으로 만든 공무원 노후 우선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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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가 재무제표에서 드러난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는 940조원에 달했다. 국가 재무제표상 부채의 절반이 넘는(56%) 규모다. 지금도 정부 재정으로 공무원·군인 연금 지급 부족액을 보전(2018년 3조8000억원)하고 있다. "공무원 노후 생활비 때문에 나랏빚이 늘었다"는 여론이 높아진 까닭이다.

정부는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기에 바쁜 모습이다. 정부는 수차례 연금충당부채는 지급 시기·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추정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상황에 따라 이 규모가 들쭉날쭉할 수 있고, 지금은 저금리 상황이다 보니 현재 가치로 환산한 연금 지급액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는 게 문제다. 보도자료와 브리핑을 통해 사상 최대치로 늘어난 부채 규모를 발표하고도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회계 장부상(재무적으로) 늘어난 것일 뿐"이란 해명만 있었다.

정부의 이 같은 접근이 과연 잠재적 부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국가 재무제표 작성 취지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가 재무제표 작성은 국채·차입금 등 확정채무 위주로만 관리했던 기존 재정 관리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알기 쉬운 국가회계』에는 "국가 재무제표 도입으로 연금충당부채 등 미래 재정부담 능력을 예측해 재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나와 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연금충당부채는 앞으로도 늘어나는 반면 인구 감소, 경제성장률 하락 등으로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면, 정부는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2015년에는 연금충당부채를 53조원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회계장부에 드러난 잠재적 부채를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까닭에 공무원 연금 개혁이 시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지난해부터 5년간 공무원을 17만4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증원된 공무원에게만 앞으로 급여 327조원, 연금 92조원이 지급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가입자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은 45%지만 공무원연금은 51%다.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에 노후까지 보장하는 연금까지 생각하면 공무원보다 좋은 직업을 찾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를 준비하는 ‘공시족(公試族)’만 41만명에 육박한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정부는 애써 측정한 수치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폭로한 적자 국채 발행 소동과 빗나간 세수 추계 이후 또 한 번 빈곤한 재정 관리 철학이 읽히는 대목이다.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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