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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로 박고 찌르는 소싸움 "초식동물 학대" vs "합법적인 민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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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대회 모습. [사진 동물자유연대]

소싸움 대회 모습. [사진 동물자유연대]

나는 '싸움소'다. TV에서 한 번쯤 봤을 거다. 덩치가 큰 수소끼리 힘겨루기하는 모습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다. 말 그대로 '소싸움'이다. 뿔 달린 머리를 맞대고 싸우다가 먼저 도망치는 소가 지는 경기다.

정읍·청도 등 전국 11개 지자체 연중행사 #소싸움협회 "사랑 없으면 싸움소 못 길러" #동물자유연대 "제 자식에게 싸움 시키나" #역사학자 "관이 지탱하면 민속 아닌 관속"

현재 우리나라에는 나 같은 싸움소가 1000여 마리 있다. 몸무게는 보통 600~800㎏ 나가지만, 그보다 무거운 무제한급 동료들도 적지 않다. 6~9살이 전성기지만, 몸 관리를 잘하면 20살까지 '현역 선수'로 뛸 수 있다.

사람들이 하는 이종격투기만큼 우리도 싸움 기술이 다양하다. 뿔로 공격하는 '뿔치기', 상대 뿔에 내 뿔을 거는 '뿔걸이', 무작정 힘으로 미는 '밀치기' 등이다. 우리가 화려한 기술을 뽐낼수록 관중들은 열광한다.

우리 주인들은 "싸움소는 타고 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근성과 투지·체력은 필수다. 특별훈련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200㎏ 되는 타이어를 몸에 달고 훈련장을 돌거나, 뿔로 타이어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체급끼리 맞붙지만, 싸움이 격해지다 보면 상대 뿔에 찔려 피를 흘리거나 살가죽이 찢어지기 일쑤다. 겁에 질린 친구들은 똥오줌을 지리기도 한다. 드물지만 싸우다 죽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소싸움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 학대"라며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우리 주인들은 "민속 경기"라며 펄쩍 뛴다. 현재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 경남 창원시·진주시·김해시·의령군·함양군·창녕군 등 11개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소싸움 대회를 연다.

녹색당 최은희 회원이 정읍시의회 앞에서 '소싸움 추경예산 삭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정읍녹색당]

녹색당 최은희 회원이 정읍시의회 앞에서 '소싸움 추경예산 삭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정읍녹색당]

대회당 2억원 안팎이 드는데, 지자체가 대부분 예산을 댄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관람객 대부분이 어르신이어서 새로운 수요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지자체들은 "소싸움은 동물 학대가 아니라고 법에 나와 있다"고 항변한다. 동물보호법 8조 2항에서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했다. 개싸움이나 닭싸움은 단속 대상이지만, 소싸움은 불법이 아니란 얘기다. 경북 청도에서는 도박도 허용된다.

양쪽 논리가 워낙 팽팽해 누구 말이 옳은지 당사자인 나도 헷갈릴 정도다. 아무리 '소귀에 경 읽기'라지만 양쪽 얘기를 두루 들어봐야겠다.

허은주 수의사는 "소는 완전한 초식동물로서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소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본래 유순한 동물에 싸움을 시키는 것 자체가 학대"라고 말했다. 그는 "뿔 때문에 소들이 입는 상처가 많고, 복부가 찢어져 장기가 빠져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훈련의 잔혹성도 거론했다. 그는 "억지로 소의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뱀탕과 개소주 등을 먹여 살을 찌우고,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산악 달리기를 시키거나 산비탈에 매달리게 하는데, 그러면 소는 만성적인 관절염이 생겨 평생 고통스럽게 산다"고 했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많다. 동물보호단체 등은 "소싸움 대회를 여는 지자체들은 대부분 재정자립도(자체수입/세입)가 낮은데도 매년 2억원 안팎의 대회 예산을 지원한다"고 꼬집었다. 해마다 10월 민속소싸움대회를 열고 있는 정읍시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기준 12.6%로 전북 14개 시·군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그런데도 올해 싸움소 사육(사룟값) 지원과 대회 출전 경비 등 추가경정예산 1억1360만원을 편성하려다 지난 29일 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하지만 소싸움대회 예산 2억2052만원은 그대로다.

동물학대소싸움도박장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과 동물자유연대 등 회원들이 지난 19일 정읍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싸움 관련 추경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정읍녹색당]

동물학대소싸움도박장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과 동물자유연대 등 회원들이 지난 19일 정읍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싸움 관련 추경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정읍녹색당]

권대선 정읍녹색당 운영위원장은 "정읍시는 최근 5년간 소싸움 예산으로 30억원 넘게 지원했다"며 "설사 (소싸움이) 전통이라 하더라도 지자체가 혈세를 투입해 장려해야 할 사업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읍시는 당초 110억원을 들여 소싸움 대회 등을 할 수 있는 '축산 테마파크' 건립도 추진했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닥쳐 소싸움장 없는 '동물 테마파크'로 방향을 틀었다.

'동물자유연대' 강재원 활동가는 "소싸움은 합법이지만, 시대가 변하고 시민들 인식이 바뀌면 법과 전통문화 양상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소싸움인 스페인의 '투우'조차 동물 학대로 보는 인식이 높아졌다"며 "스페인 17개 자치단체 중 이미 3곳이 '투우'를 금지했다"고 전했다.

그는 "굳이 전통이 중요하다면 소를 이용하지 않는 민속놀이도 있다"며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내려오는 '영산 소머리대기'를 예로 들었다. 소 모형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는 민속놀이다. 그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이용해야 한다면 이를 최소화하자'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소싸움 옹호론자들은) '소를 자식처럼 아낀다'고 하는데,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싸움시키려고 키우느냐"고 되물었다.

반론도 만만찮다. (사)한국민속소싸움협회 이진철 정읍지회장은 "소도 안 키워본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소싸움 경력이 20년이 넘는 이 회장도 싸움소를 7마리 키운다. 그는 "소하고 하루 24시간 같이 산다. 소를 사랑하지 않으면 싸움소를 기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싸움 대회 모습. [사진 동물자유연대]

소싸움 대회 모습. [사진 동물자유연대]

'소 학대' 논란에 대해 이 회장은 "비슷한 체급끼리 싸워 크게 안 다친다. 소가 질 것 같으면 아예 경기장에 안 들어가거나 힘이 부치면 억지로 싸우라고 해도 도망간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뿔을 뾰족하게 갈거나 소를 때려서는 안 되는 등 (소를 보호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싸움소가 죽으면 도축장에 보내지만, 일부 주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줬다며 선산에 비석을 세워 묻어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싸움소가 한 마리에 수천만원에서 비싼 놈은 2억5000원까지 간다. 아파트 한 채 값인 소를 함부로 다루겠냐"고도 했다. 그는 "소끼리 부딪치기 때문에 기스(흠)가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세린(상처 치료제)을 발라 주면 일주일이면 치료된다"고 했다. 또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관절염이 생긴다. 젊은 소가 (소싸움과 훈련 때문에) 관절염에 걸린다는 건 과장"이라고 덧붙였다.

'초식동물에 부적절한 음식을 먹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싸움소도) 일반 소처럼 주로 여물을 끓여 먹인다. 보약은 거의 안 먹인다"고 했다. "살이 너무 찌면 싸움을 못 하고 위가 상해 오래 못 산다"는 것이다. '훈련이 과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훈련을 따로 안 한다. 트럭에 싣고 다니는 것 자체가 훈련이다. 차가 달릴 때 네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는다"고 했다.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측이 이달 정읍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싸움은 법적으로 동물 학대가 아니고, 수천년 역사를 지닌 민속 경기"라며 소싸움 추경예산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국민속소싸움협회]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측이 이달 정읍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싸움은 법적으로 동물 학대가 아니고, 수천년 역사를 지닌 민속 경기"라며 소싸움 추경예산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주인 양반들은 우리를 데리고 전국 대회를 돌아다닌다. 서로 다른 대회에 나가줘야 자기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출전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품앗이' 개념이다. 소싸움 대회 상금은 체급마다 400만~800만원 수준이다. 주인들은 "대회마다 보통 일주일간 머물며 소 운반비와 숙박비 등으로 100만원씩 쓴다"고 했다. 이 때문에 주인 양반들끼리는 서로 유대 관계가 끈끈하다.

'고향을 빛낸다'는 애향심도 대단하다. 이 회장도 자기 소 등에 염색약으로 '정읍'이라 쓰고, 이름도 '내장산' '단이' '풍이'라 지었다. 다른 소 주인들도 자기 지역 명산(名山) 이름을 붙이거나, 누아르 영화 주인공 이름 같은 '쌍칼', 종교에 따라 '아멘'이라 짓는다. 소싸움 대회는 비슷한 시기 그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관광객을 모으는 구실도 한다.

'누구를 위한 소싸움이냐'는 근본적 물음도 제기된다. 송화섭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지역 주민 다수가 자생적으로 즐기지 않고, 관에서 예산을 쏟아부어 지탱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민속이라는 건 민중과 서민의 생활 문화인데, 관에서 경기장을 만들고 소싸움 대회 예산을 대면 그건 민속이 아니라 '관속'"이라고 지적했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본 기사는 최근 소싸움을 둘러싼 찬반 논란에 대한 동물보호단체와 한국민속소싸움협회 등을 취재한 내용과 민속 문헌을 바탕으로 싸움소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소싸움의 유래>

소싸움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인류가 약 3000년 전부터 소를 길렀다고 하니, 소싸움 역사도 그쯤 됐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한시대부터 목동들이 초원에서 소싸움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옛날 싸움소는 그 마을에서 가장 강하다고 공인된 소였다고 한다. 싸움 장소는 두 마을 경계에 있는 개천이나 논밭이었다. 당시 소싸움은 소 주인과 그가 속한 마을 공동체의 명예가 걸린 이벤트였다.

하지만 요즘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규모도 전국 대회로 커지고, 성격도 상업적으로 바뀌었다.

현재 충북 보은군과 전북 완주군·정읍시, 대구 달성군, 경북 청도군, 경남 창원시·진주시·김해시·의령군·함양군·창녕군 등 11개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소싸움 대회를 연다.

정부가 2002년 제정한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전통소싸움법)'에 따르면 싸움소는 '소싸움 경기에 출전하게 할 목적으로 소싸움 경기 시행자에게 등록된 소'를 말한다. 이 법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소싸움을 활성화하고 소싸움 경기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농촌 지역의 개발과 축산 발전의 촉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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