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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 빠진 항공업계 빅2…‘형제의 난’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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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두 항공사의 최대주주이자 오너가 하루 차이로 대표이사직을 내놓게 되면서다.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무산된 다음 날인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거래정지 등 파문의 책임을 지고 퇴진을 발표했다.

미군화물 수송으로 사업 시작 #한진상사 모태로 큰 대한항공 #부친 유언장 놓고 4형제 6년 소송 #중고 택시 2대로 출발한 금호 #아시아나항공 설립하며 승승장구 #대우건설 인수 갈등 … 형제간 송사

대한항공의 역사는 한국 여객의 역사다. 조양호 회장의 부친이자 그룹 창립자 고(故) 조중훈 회장이 1945년 설립한 한진상사가 모태다. 한국전쟁 직후 인천에서 미군 화물 수송을 시작으로 수송·여객업을 시작한 한진상사는 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며 종합운송기업으로 거듭났다.

조양호. [뉴스1]

조양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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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입사한 조양호 회장은 아버지 조중훈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3년 한진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을, 2남 조남호 회장과 3남 조수호 회장은 각각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을 물려받았고, 4남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을 맡았다.

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5년 4형제는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는다. 재산 대부분을 대한항공과 정석기업에 상속한다는 선대 회장의 유언장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6년 동안 소송전을 벌였다.

한진가(家) 형제들은 차례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의 경영권을 잃었다. 1999년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20년 간 대표이사로 경영권을 행사했던 조 회장은 27일 주주총회 45분 만에 대표이사직을 잃었다.

국적 항공사 라이벌인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고속성장과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46년 중고 택시 2대로 운송업을 시작한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은 고속버스와 운송업으로 사세를 키웠다. 금호그룹이 도약한 건 전두환 정부 시절 제2민항 사업자에 선정되면서였다. 88년 서울항공이란 이름으로 법인을 세웠지만 취항 직전 아시아나 항공으로 이름을 바꿨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 여객 수요가 증가하던 9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정부의 경쟁체제 도입 방침에 승승장구했다. 1990년 처음으로 김포-일본을 노선을 취항했고 이듬해 미국 노선을 시작하며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박삼구 회장은 84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에 나섰다. 9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에 취임했고 2001년 그룹 부회장을 거쳐 2002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한진그룹처럼 몰락의 전조는 형제간 싸움으로 시작됐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해 사세를 키웠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였다. 대우건설 매각을 제안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2014년 아시아나 항공 주주총회를 앞두고 박찬구 회장이 박 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기도 했다. 형제간에 오간 송사만 10건이 넘는다.

그룹의 재무상태가 악화하면서 박 회장은 마지막까지 그룹 부활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엔 자신의 금호고속(그룹 지주사) 지분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고 올해 회계감사 논란까지 겹치면서 악재가 계속됐다. 본사 사옥 등을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박 회장은 자신이 키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권을 반납하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이동현·오원석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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