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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해체만은 막자…박삼구 “모든 책임지고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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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 발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해 7월 ‘기내식 대란’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연 박 회장. [뉴스1]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 발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해 7월 ‘기내식 대란’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연 박 회장. [뉴스1]

27일 저녁 시내 모처에서 박삼구(74)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와 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KDB산업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이다.

감사의견 한정 여파로 부실 드러나 #산은 “금호, 시장 우려 해소를” 압박 #채권자·투자자 대책 서둘러 내놔 #이틀새 양대 국적 항공 총수 퇴진

이날 이 회장은 “먼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금호가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인 28일 박 회장은 “금융시장 혼란 초래 등 모든 책임지고 퇴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박 회장의 이번 결정은 그룹 해체만은 막자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는 아시아나항공이 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지면 사실상 그룹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 박 회장이 사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산업은행의 지원을 끌어내려는 게 결정적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박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18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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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지난 21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의 ‘한정’ 의견 감사보고서 제출이 기폭제였다. 아시아나항공은 22일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25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26일 감사 의견을 ‘적정’으로 정정한 감사보고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면서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감사의견 ‘한정’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정한 최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부채(연결기준)는 수정 전보다 1400억원 정도 늘었고 부채 비율은 625%에서 649%로 뛰었다.

이동걸

이동걸

추가 부실을 반영하다 보니 당기순손실은 1595억원에 달했다. 앞서 반영하지 않았던 운용리스 항공기 정비 비용과 자회사 부채, 마일리지 부채를 반영하면서다.

영구채 발행과 같은 재무개선 작업도 타격을 받으면서 금호아시아나 그룹 전체로 ‘한정 파문’이 확산했다.

신용평가사 입장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가 이어진다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  이 회사의 신용등급(BBB-)을 투기등급(BB+)으로 낮추면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1조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에 대해 투자자가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공동관리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박 회장은 최악의 상황으로 가기 전 산업은행으로부터 차입금 만기 연장 등을 받아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자 신뢰의 문제도 있었다. 당장 29일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과 모회사인 금호산업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투자자가 이해할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시장 불안이 더 커지고 비난은 거세질 것이란 위기감도 박 회장의 사퇴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5일 대구·경북 지역 자영업·자동차부품산업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회사(아시아나항공)와 대주주가 좀 더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성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산은, 재무구조 개선 MOU 연장 등 지원 나설 듯

재계 일각에선 국내 항공업계 맞수였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도 박 회장의 사퇴 결심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회사의 경영 악화에 대해 그룹 총수가 책임을 안 질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의 연임 실패가 어떻게든 박 회장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의 퇴진으로 경영 정상화의 매듭을 풀 여지가 생겼다. 채권단은 지난해 4월 6일 아시아나항공과 1년 기한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다음 달 초 회의를 통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채권단으로서는 박 회장이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MOU 연장을 포함한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은행은 실사를 통해 현재 경영상황을 살펴보고 금호 측에서 제출할 이행 계획을 바탕으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MOU 연장을 위해서 강도 높은 요구 조건이 반영될 전망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선 고강도 재무개선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산업은행과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다음 달 초를 목표로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담을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한편 이날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아시아나항공은 전날보다 2.92% 오른 352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5.05% 오른 3935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상승 마감한 것은 지난 15일 이후 9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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