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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중근 의사 순국일…복원한다던 하얼빈 기념관 아직도 공사중

중앙일보

입력

중국 광고 패널과 철조망으로 가려진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1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표지석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광고 패널과 철조망으로 가려진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1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표지석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광고 패널과 철조망으로 가려진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이곳에서 1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광고 패널과 철조망으로 가려진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이곳에서 1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신경진 특파원

1899년 러시아 모스크바행 동청열차의 종착역이었던 하얼빈 남쪽 역사. 지난해 12월 25일 개축을 마쳤으나 부속 건물들은 여전히 공사중이다. 신경진 특파원

1899년 러시아 모스크바행 동청열차의 종착역이었던 하얼빈 남쪽 역사. 지난해 12월 25일 개축을 마쳤으나 부속 건물들은 여전히 공사중이다. 신경진 특파원

안중근 의사의 순국 전날(25일) 찾아간 하얼빈 역사의 의거 현장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1번 플랫폼은 광고 패널과 철조망으로 가린 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2014년 1월 문을 열었던 안중근 기념관은 복원 소식만 들릴 뿐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의거 현장인 1번 플랫폼 저격 표지석 없어 #기념관 직원 “이전 지시 못들어” 이전說만 #“천당에서 기쁘게 만날것” 마지막 편지만

24일 하얼빈 역사에서 3㎞가량 떨어진 조선민족예술관의 안중근 기념관을 찾았다. 관리 직원은 “상부로부터 하얼빈역으로 기념관을 이전한다는 지침을 전혀 듣지 못했다”며 “한국에서 보도가 나왔다고 들었지만 현시점에서는 오보”라고 말했다.

현지 관계자는 “아직 남쪽 하얼빈 구역사는 공사가 끝나지 않아 이전이 미뤄지고 있다”며 “올해 중으로 이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이전을 명확히 알려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의 안중근 기념관 표지. 애국주의 교육기지라는 간판이 문 왼쪽에 붙어있다. 신경진 특파원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의 안중근 기념관 표지. 애국주의 교육기지라는 간판이 문 왼쪽에 붙어있다. 신경진 특파원

안중근 기념관이 원래 자리했던 조선민족예술관은 찾는 관람객보다 봉사활동 중인 현지 대학생 숫자가 더 많았다. 하얼빈 역사에 전시됐던 안 의사의 흉상과 부조 등 전시물은 이곳으로 옮겨 전시 중이었다. 2006년 하얼빈 한국 주간을 계기로 세워진 안중근 기념관은 2008년 한국 국가보훈처가 1억원의 찬조금과 유물을 기증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2013년 한·중 정상회담 이후 의거 현장으로 전격 자리를 옮겼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영토 문제로 갈등이 한창이었다.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순국일을 맞아 찾아온 관람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일산에서 왔다는 관람객은 “안 의사의 유물을 직접 보니 가슴이 찡하다”며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편지가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네이멍구(內蒙古)에서 온 관람객 치커(齊柯)는 “역사를 잊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강해지자(不忘歷史 吾輩自强)”이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다 당신과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는 소감 등 방명록에는 한국 관람객과 교포들이 적은 한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얼빈역은 건물 외관만 같을 뿐 전혀 남북 양쪽에 새로운 역사로 변모해 있었다. 새롭게 지은 북쪽 신청사에서 티켓을 끊고 보안 검색을 통해 2층 대합실에 들어서자 ‘100년 하얼빈역’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한쪽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8개 플랫폼 14개 개찰구, 연간 승객 2800만명을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기차역답게 큰 규모였다.

플랫폼은 모두 새롭게 단장됐다. 의거가 있었던 1번 플랫폼은 아직 사용되지 않고 남쪽 구역사 출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저격 현장의 표지석도 보이지 않았다.

“갑오 중일전쟁 후 본세기 초에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두 나라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동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중국인의 영원한 총리로 추앙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1963년 ‘중·조(한·중) 역사관계에 관한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중근 기념관의 위치가 중·한, 중·일 관계의 친소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상과 증거 진열관’이란 표지석이 세워진 전시관. 이곳에서 일본군이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상과 증거 진열관’이란 표지석이 세워진 전시관. 이곳에서 일본군이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신경진 특파원

하얼빈 도심에서 남쪽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있는 구 731부대 부지는 ‘중국 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유적지’, ‘중국 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죄상과 증거 진열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중·일 과거 역사는 여전히 하얼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하얼빈=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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