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7월호] 새판짜기 급류… 政街 폭풍전야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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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구심력 상실로 ‘헤쳐모여’할 듯
영남 중심 개혁신당 창당설 돌출해 긴장감

5·31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새판짜기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패배해 정치적 위기에 몰린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카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느긋한 듯하지만 대권 주자들의 경쟁이 가열되면 누군가 당을 뛰쳐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건 전 총리의 힘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지지율이 거품인지, 非한나라당 연대의 구심점이 될 정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격변의 시기에 새로운 영웅이 부상해 기존의 높은 벽을 깨뜨릴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01 노무현 어디로 가나?
정국 주도권 상실… 영남 중심 개혁신당 창당설도

신당 추진 세력이 꼭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야 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민주당을 포함한 다른 세력과 통합하겟다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당을 떠나면 된다.

신당 추진 세력이 꼭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야 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민주당을 포함한 다른 세력과 통합하겠다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당을 떠나면 된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5·31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승부수를 띄워 국면을 전환해 왔다. 위기를 더욱 가파르게 몰고 가 결국 승리하는 ‘대란대치’ 전략이다.

5·31 지방선거 후 노 대통령의 선택을 두고 온갖 예측이 난무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것이라거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의외로 잠잠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6월3일 청와대를 찾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당적을 유지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당장 탈당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그러나 ‘당적 유지’가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당이 노 대통령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호남과 수도권 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이런 기류가 강하다. 지방선거에서의 참패가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실패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노 대통령 생각의 일단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드라마는 버림으로써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버릴 것이 없다. 던지고 버리는 정치를 해 왔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호남표를 생각해 민주당과 통합하고 영남을 고립화하는 구도로 나가면 얼마든지 쉽게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쉬운 길이 있지만 어렵게 가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요약하면 탈당 등과 같은 극적인 승부수는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과의 통합은 안 된다는 뜻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신념으로 갖고 있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탈당 카드 또한 지금으로서는 득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인 듯하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정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은 무엇일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6월 중순께 핵심 참모들이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자리에서 향후 정국 구상을 두고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핵심 당직자는 “5·31 지방선거가 끝난 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청와대에서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자리에서 당·청 관계 재정립 등에 관한 말들이 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개혁신당을 준비 중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핵심 인사가 당 내외 인사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들린다.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부산정권’ 발언, 김두관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등의 민주당과의 통합 불가 발언 등이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

“영남권 개혁세력은 자신들의 민주화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따라서 자신들을 대변할 개혁신당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러한 생각을 일정부분 공유하지만 지역분파성을 배격하는 소신과 어긋나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이들이 민주당과의 통합에 결사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당 추진 세력이 꼭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야 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민주당이나 다른 세력과 통합하겠다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당을 떠나면 된다. 대신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내부 동력을 찾아 나설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어쩌면 이런 수순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불투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가 끝난 후에는 노 대통령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이 어떤 카드가 될지는 노 대통령 자신만이 알고 있다.
노 대통령이 오래 조용히 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국은 급속히 대선 국면으로 전환된다. 그때는 레임덕이 닥쳐 어떤 칼을 빼들어도 날이 무딜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 대통령의 선택은 무엇이며, 그는 어디로 갈 요량일까?

이필재_월간중앙 편집위원(jelpj@joongang.co.kr)
윤길주_월간중앙 기자(ykj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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