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보훈엔 독립·민주도 있지만, 호국이 가장 큰 것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년 연속 천안함 추모식 불참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7주기를 맞아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처음으로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란 입장을 밝혔으나 집권 뒤에는 관련 언급을 피해왔다. 천안함 폭침을 믿지않는 일부 지지층과 남북관계를 의식한 행보란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7주기를 맞아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처음으로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란 입장을 밝혔으나 집권 뒤에는 관련 언급을 피해왔다. 천안함 폭침을 믿지않는 일부 지지층과 남북관계를 의식한 행보란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9주기를 맞는 천안함 폭침(26일)과 제2연평해전 및 연평도 포격 전몰장병들을 기려 22일 열릴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불참키로 했다. 유족들의 실망도 깊어지고 있다.

전임 두 대통령 늘 참석한 국가행사 #해외·지방 방문 이유로 연속 불참 #유족 위로 부탁하자 고개만 끄덕 #‘북한에 빌미 안 주려 참석 기피’ 설

2016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서해수호의 날은 천안함이 폭침(2010년 3월 26일)된 3월 넷째 주 금요일에 매년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다. 1회 (2016년)엔 박근혜 대통령(당시)이 참석했고 2회인 2017년 행사엔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참석했다. 3회인 2018년엔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이 기대됐으나 베트남 국빈 방문 중임을 이유로 불참하고 이낙연 총리가 참석했다. 그런데 22일 열릴 4회 행사에도 문 대통령은 불참하고 이 총리가 참석하기로 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22일엔 문 대통령이 오전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지방 경제 투어를 가는 일정이 잡혀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일정은 지난 주말 문 대통령의 귀국 직후 확정돼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가지 않는다는 방침이 그때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성우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장과 전준영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장에게 물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한다고 한다.
이성우(이하 ‘이’)=“참, 왜 유독 우리 유가족들에게만 그러는지 모르겠다. 세월호와 5·18 유족들은 그렇게 위해 주는데 서해에서 전사한 우리 아이들과 유족들만은…(목이 메어 말을 더듬다가) 지난해는 순방이란 이유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아무 이유도 없는데 불참하니 여론이 좋게 평가하겠나?”
문 대통령 집권 뒤 대통령을 본 적 있나.
=“2017년 6월 5일과 지난해 6월 15일 두 번 청와대에 갔다.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 오찬이었다. 두 번 다 대통령이 자리한 헤드테이블엔 못 앉았다. 재작년엔 1번 테이블, 지난해엔 20번대 테이블에 앉았다. 1번 테이블에 앉았을 때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0번대 테이블 땐 남북군축비서관이 자리했다.”
대통령과 대화할 기회는 없었나
=“문 대통령이 재작년 행사 땐 입구에서 참석자들을 맞아줬다. 나는 악수하면서 ‘천안함 유족 대표다. 유족들에게 위로와 격려 좀 해달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대화의 기회를 잡고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라.”
응답을 안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나마 지난해엔 악수할 기회도 없었다”
전임 대통령들은 어땠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매년 참석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유족 대표 46명을 추모식 전 휴게실에서 따로 만나 위로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입장을 직접 들은 바가 있나.
=“재작년 청와대 오찬 당시 내 테이블에 앉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천안함 침몰이 누구 소행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물었다. 정 실장은 ‘우리 입장은 국방부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고 했다. 내가 ‘북한 소행이란 거냐’고 콕 집어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 사석에선 이랬지만 공석에서 이 정부가 그런 말을 한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천안함 폭침과 무관하게 5·24 조치를 빨리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통일부 장관에 지명됐다.
=“인격과 자질이 부족한 인사다. 막말을 밥 먹듯 했더라. 그런 사람이 통일부 수장이 될 수 있나?”
그가 장관이 돼 천안함 행사에 온다면.
전준영(이하 ‘전’)=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행사에 왔을 때 유가족들이 소리 지르며 막았다. 그런 사태가 재연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문 대통령이 보훈 가족 오찬에서 연평해전 등 전몰 희생자에 대한 예우는 “국가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민주화와 호국, 둘 다 챙길 수 있는데 너무 민주화에만 치우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여름 해병대 마린온 헬기 추락 때도 청와대가 영결식 직전까지 조문 사절 한 명 안 보내지 않았나. 이달 초 문 대통령이 참석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중계를 보니 대통령 가슴에 태극기 배지 대신 (임정 수립) 100주년 배지가 달려있더라. (화나서) 바로 TV를 꺼버렸다. 군 행사라면 태극기 배지 다는 게 상식 아니냐. 그동안 문 대통령이 어떤 행사에서도 태극기 배지 다는 걸 못 봤다. 그러니 민주당도 군을 홀대하는 길로 가지 않나.”

보훈처는 지난 18일 총리 참석 공지를 받고 준비에 들어갔다.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사견을 전제로 답했다.

유족들 실망이 크다.
“지난해 3회 행사 때 유족들이 대통령 바뀌고 첫 행사니까 당연히 올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순방 일정 때문에 못 왔다. 이번엔 정말 대통령이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유 없이 불참하니 실망이 클 것이다. 또 대통령이 약자들을 많이 위로해왔지 않나. 그런데 천안함 유족 등 호국 유족들은 잘 안 만나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나’는 심정이 든다고 한다. 대통령이 보훈을 강조하는데, 보훈엔 독립·민주도 있지만, 호국에 가장 큰 비중이 있는데 안 챙긴다고 본다.”
행사의 격이나 전례를 보면 대통령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된 것이다. 천안함 폭침과 제2연평해전 및 연평도 포격을 합쳐 정부기념일을 만든 건 국민이 이 사건들을 오래 기억하고 추모하게 해달라는 유족들의 건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여 법에 근거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의를 생각하면 대통령이 오는 행사가 맞다.”

문 대통령이 집권 뒤 유독 천안함과 관련해선 행보를 주저하는 이유가 뭘까. 두 가지가 꼽힌다. 국내 지지층과 남북관계를 의식한 행보란 것이다.

손정목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문 대통령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란 건 인정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이들이 지지층 가운데 많다 보니 대놓고 북한 소행이라 얘기 못 하고 천안함 행사도 기피하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을 의식한 행보’ 설에 대해선 태영호 전 북한 공사에게 물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천안함 행사에 가는 걸 어떻게 보나.
“북한은 문 대통령이 천안함 행사에 가는 건 문제시 삼지 않는다. 반응을 보일 일도 없다. 다만 무슨 발언을 하는지는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발언에 꼬투리가 잡힐 가능성을 우려해 안 갈 수 있다는 뜻 같다.
“만일 ‘천안함은 북한 소행’ 같은 평양을 자극할 발언이 나오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강경노선으로 돌아선 북한이 그걸 빌미로 판을 깰 것으로 (문 대통령이) 우려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군 추모 행사에 가서 안보 얘기를 하지 않기도 그렇고 하니 차라리 안 가겠다고 결정한 것 같다.”
북핵 정세가 대통령의 천안함 행사 불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지금 북한은 미국에 불만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침묵하는 가운데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치고받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문 대통령이 천안함 행사에 나가면 북한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북한이나 지지층을 의식해 천안함 행사를 기피한다면 판단 실책”이라고 했다. "통일부 장관 후보 지명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은 마당에 천안함 행사마저 가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안보관에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크다. 또 천안함 행사 참석 여부는 지지율 몇% 등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인 만큼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천안함 추모식 역대 대통령 참석여부

2011년 3월 26일 추모식 이명박 대통령 참석
2012년 3월 26일 추모식 이명박 대통령 불참(서울핵안보정상회의) 23일 사전 참배
2013년 3월 26일 추모식 박근혜 대통령 참석
2014년 3월 26일 추모식 박근혜 대통령 참석
2015년 3월 26일 추모식 박근혜 대통령 참석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5일 “천안함 폭침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천안함을 타격한 후에 북한으로 복귀”라며 북한 소행임을 5년 만에 처음 명시)
2016년 3월 25일 서해수호의 날(1회) 박근혜 대통령 참석
2017년 3월 24일 서해수호의 날(2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참석
2018년 3월 23일 서해수호의 날(3회) 문재인 대통령 불참(베트남 순방), 이낙연 총리 참석
2019년 3월 22일 서해수호의 날(4회) 문재인 대통령 불참(예정)(지방 방문), 이낙연 총리 참석(예정)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