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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을 잡아라”…학령인구 줄자 해외로 눈 돌리는 고교들

중앙일보

입력

송숙영 미림여고 글로벌역량지원부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베이징 신푸슈에외고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학교 홍보를 하고 있다. [사진 미림여고]

송숙영 미림여고 글로벌역량지원부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베이징 신푸슈에외고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학교 홍보를 하고 있다. [사진 미림여고]

“미림여고는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방과 후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대비반 외에 말하기 과정을 개설하고, 수업 시간에 중국인 강사를 한 명 더 참여시켜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또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진로체험과 동아리 활동도 확대하려고 합니다.”

미림여고, 지난해 말 중국서 설명회 개최 #2018년 전국 고교 외국인 유학생 290명 #관리 어려움 때문에 포기한 고교도 있어 #유학생에 맞는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해야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베이징 신푸슈에(新府學)외고 본관 2층 시청각실. 송숙영 미림여고 글로벌역량지원부장의 말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시청각실에는 이 학교 한국어과 1·2학년 학생 40여명이 앉아 있었다. 50분간 이어진 설명회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영어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뭘 더 준비하면 되느냐’ ‘대학 갈 때는 어떤 조건이 필요 하느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미림여고는 2016년부터 올해로 4년째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초반에는 한국에 유학 오고 싶어 하는 고교생들을 학교에 편입학시키는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교감과 담당 부장이 직접 중국의 외고로 찾아가 입시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송 부장은 “사드의 영향으로 한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고교 때부터 유학을 오고 싶어 하는 중국 학생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며 “지난해 설명회에 참여한 학생 중 10명 정도가 올해 2학기에 한국으로 유학 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고교들이 늘고 있다. 서울 미림여고·대원외고·명덕외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학교는 2016년부터 중국인 유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미림여고에는 중국인 유학생 10명과 일본인 유학생 2명이 다니고 있고, 대원외고·명덕외고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각각 30명·3명씩 재학 중이다. 미림여고는 올해 상반기 중에 베트남 유학생 편입학도 준비 중이다. 최근 이 학교에 입학한 후지사키 유메노(16)양은 “지난해 여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한국 고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며 “어려서부터 즐겨본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화를 동경했는데, 이곳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신푸슈에외고 학생들 모습. 이중 10명 정도가 올해 하반기에 한국으로 유학 올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 미림여고]

중국 베이징에 있는 신푸슈에외고 학생들 모습. 이중 10명 정도가 올해 하반기에 한국으로 유학 올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 미림여고]

고교들이 외국인 유학생에 관심을 갖는 건 학령인구 감소의 대안이 될 수 있어서다. 1999년 808만명이었던 초중고 학생 수는 2018년 558만명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고등교육기관(대학·대학원)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3481명에서 14만2205명으로 40배 넘게 늘었다. 한 서울 자사고 교장은 “일반고와 달리 학생들이 내는 학비로만 학교를 운영하는 특목·자사고 중에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곳이 많은데,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면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고교가 유학생을 단순히 부족한 재정 보충 수단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학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 학생들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등의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미림여고 3학년 임지영(18)양이 그런 학생 중 하나다. 임양은 “고2가 될 때까지 꿈이 없었는데,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중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대학에서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해 중국어 전문가가 되거나 문화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외국인 학생들은 고교 때부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좀 더 수월하게 진학하고, 한국 학생들은 외국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로벌 감각을 기르고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입 수시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며 “유학생 유치는 외국 학생과 한국 학생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고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전국의 고교 외국인 유학생 수는 감소하는 추세다. 1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고교 외국인 유학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유학 온 외국인 고교생은 2017년 315명에서 지난해 290명으로 줄었다. 서울지역이 163명에서 128명으로 25명, 부산은 50명에서 11명으로 39명 줄었다.

유학생이 감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리의 어려움을 겪은 고교들이 유학생을 더는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중국인 유학생 편입학을 시도했던 우신고와 경희고는 지난해부터 유학생 편입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신고 관계자는 “대학과 달리 고등학생은 미성년자기 때문에 학교에서 24시간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주석훈 교장은 “한국 고교에서 유학하려는 외국인 학생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만큼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외국인 학생들에 맞춤형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게 자율성을 확대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6년 ‘국내 고교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방안’ 정책연구까지 진행했지만, 현재 고교 유학생 확대에 대한 논의는 멈춰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고교생까지 외국에서 데려와야 하느냐는 시선도 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장은 “대학에서도 무분별하게 유학생을 데려와 불법체류 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교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늘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외국인 유학생 관리 내실화가 우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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