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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폭행·총까지 쏴···"공무원 상대 폭력, 도를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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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 더는 참지 못하겠어요” 민원인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던 충남 계룡시의 공무원노조가 직접 민원인을 고발하겠다며 강조한 말이다.

지난 7일 오후 민원인들이 계룡시청 2층 복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공무원들이 시장실 입구를 막고 이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신진호 기자

지난 7일 오후 민원인들이 계룡시청 2층 복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공무원들이 시장실 입구를 막고 이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신진호 기자

계룡시 공무원노조는 정당한 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 3명을 폭행한 민원인을 검찰·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계룡시 공무원노조 "폭력 민원인 법 심판 받아야" #행안부, 폭언·폭행 발생때 법적조치 등 강경 대응 #공무원 폭행 2017년 월평균 7.7건, 2018년 17.9건 #공무원노조 "선출직 단체장 주민 눈치 봐 미온적"

지난 5일 오전 10시쯤 계룡시 주민 80여 명은 ‘의료세탁물 공장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며 계룡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청사 2층 시장실과 복도를 점거하고 최홍묵 계룡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당시 최 시장은 외부 행사를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민원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던 계룡시청 A과장과 담당 직원이 민원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인허가 부서 담당 공무원인 이들은 얼굴과 목 등 타박상으로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받았다.

이날 민원인들의 농성은 오후 2시까지 계속됐다. 시장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단 철수를 결정한 민원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청사 1층 사무실로 진입해 A과장과 또 다른 직원을 폭행했다. 직원 역시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폭행은 물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위협적인 행동도 있었다는 게 공무원노조의 주장이다.

계룡시 공무원노조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시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담당 공무원을 폭행한 민원인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계룡시공무원노조]

계룡시 공무원노조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시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담당 공무원을 폭행한 민원인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계룡시공무원노조]

공무원노조는 “민원인의 의견과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폭력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며 “공무원을 폭행한 민원인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공무원을 폭행한 민원인을 형사 고발하고 앞으로 발생하는 폭언과 폭력 행위도 단호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최홍묵 계룡시장과 부시장 등 집행부에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조처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민원인의 공무원 폭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무원에 대한 폭행 건수는 2017년 92건에서 지난해 1~8월 143건으로 급증했다. 2017년 월평균 7.7건이던 게 지난해는 17.9건으로 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중앙부처와 자치단체에선 폭언과 폭행, 반복민원 등 특이민원이 한 해 평균 3만 건 이상 발생한다.

공무원 상대 폭력은 중앙부처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주 발생한다. 청사 출입이 제한된 중앙부처와 달리 자치단체는 업무시간에 청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장 집무실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계룡시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취소해달라며 계룡시청 안에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신진호 기자

계룡시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취소해달라며 계룡시청 안에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신진호 기자

지난해 8월 경북 봉화에서는 민원 처리에 불만을 품은 70대가 엽총을 쏴 공무원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공무원들은 “민원인의 협박과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며 공포에 떨기도 했다.

행안부는 지난해 5월 폭언 등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겠다며 개정된 ‘공직자 민원응대 지침’을 전국 모든 행정기관에 배포했다. 공무원이 육체적·정신적 피해와 특이민원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도 고려한 조치였다. 지침을 통해 민원이 발생하면 서면공고문 발송과 법적 대응에 나서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일선 민원공무원들은 정부의 이런 지침이 효과가 없다고 한다. ‘표를 먹고 사는 선출직 단체장’이 자신을 뽑아준 주민에게 법적 책임을 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주민 눈치를 보는 단체장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나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계룡시는 민원인이 제기한 문제를 차분하게 해결하면서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받은 공무원도 다독이겠다는 생각이다. 민감한 사안인 데다 주민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7일 오후 민원인들이 계룡시청 2층 복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공무원들이 시장실 입구를 막고 이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신진호 기자

지난 7일 오후 민원인들이 계룡시청 2층 복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공무원들이 시장실 입구를 막고 이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신진호 기자

계룡시 고위 관계자는 “최홍묵 시장이 피해를 본 공무원을 따로 불러 위로했다”며 “다만 노조가 민원인을 고발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계룡=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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