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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2000명 참사 그 후…런던 스모그와 전쟁 60년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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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52년 런던에서 발생한 대형 스모그로 인해 1만2000명 가량이 숨졌다. [위키피디아]

1952년 런던에서 발생한 대형 스모그로 인해 1만2000명 가량이 숨졌다. [위키피디아]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권 등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게 만든 주 원인은 중국이다. 중국의 오염 물질이 서해를 건너 한반도로 넘어오는 모습이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하고 있다.

[김성탁 특파원의 유레카 유럽] #노후경유차 통행료·주차비 차등 #‘석탄 퇴출’ 10년 계획 짜고 추진 #오리발 내미는 중국 설득하려면 #한국도 강력한 대책 서둘러야

 정부가 중국에 항의하고 저감 대책을 협의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 원인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부터 강력한 대책을 시행해야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중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인접국에서 오염 물질이 넘어오는 영향이 없어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1952년 12월 '런던 대형 스모그' 사건으로 1만2000명이 숨졌다. 당시 추운 날씨에 석탄 난방이 급증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아황산가스가 스모그와 결합한 황산 안개가 뒤덮었다. 닷새 동안 이어진 스모그로 4000명이 숨졌다. 이듬해까지 호흡기 질환자 위주로 8000명이 추가 사망했다.

런던 주택가 도로 옆에는 공해 물질을 흡착하는 관목을 심어 오염 물질의 확산을 막고 있다. 한국에도 과거 도로변에 관목이 많았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성탁 특파원]

런던 주택가 도로 옆에는 공해 물질을 흡착하는 관목을 심어 오염 물질의 확산을 막고 있다. 한국에도 과거 도로변에 관목이 많았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성탁 특파원]

 이 사건 이후 영국은 60여 년간 공기 질 개선에 매달렸다. 한반도와 비교해 깨끗한 공기를 갖게 됐지만 간혹 중국 베이징보다 공기 오염이 심한 날이 발생한다. 영국의 정책은 한국이 중국발 미세먼지 외에 국내 오염원만 줄이려해도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지를 보여준다. 특히 원자력으로 전력 공백을 막으면서 석탄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나서는 장기 에너지 개편 방향도 엿볼 수 있다.

 영국은 런던 스모그 참사 이후 1956년 ‘깨끗한 공기 법'을 만들었다. 석탄을 연료로 쓰지 못하게 하는 지역을 마을마다 지정했다. 가정 연료를 전기나 가스로 전환하는 방안을 서두르고 화력발전소 위치를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법적 틀을 만든 이정표였다. 이후 공기 오염을 줄이려고 시행한 정책은 국내 기준으로 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노후 차량에 물리는 혼잡통행료를 인상하는 '초저배출구역 제도' 시행이 다음달 8일부터 시작된다는 안내문. [런던시 홈페이지]

노후 차량에 물리는 혼잡통행료를 인상하는 '초저배출구역 제도' 시행이 다음달 8일부터 시작된다는 안내문. [런던시 홈페이지]

◇혼잡통행료 최대 3만5000원, 주차비도 차등

 런던의 도심 혼잡통행료는 2003년 도입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오후 6시 도심에 들어오면 하루 11.5파운드(약 1만7000원)를 받는다. 런던시는 2017년 10월부터 여기에 ‘유독성(Toxicity) 부과세'를 추가했다. 2006년 이전 등록한 노후 차량이 혼잡통행구역에 들어오면 10파운드를 더 물린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정한 유로4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차량도 마찬가지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 달 8일부터 초저배출구역(ULEZ) 제도를 시작한다. 올해 기준으로 13년 이상 된 휘발유 차량과 4년 이상 된 경유 차량이 도심에 들어오면 혼잡통행료 외에 내야 하는 유독성 부과세가 기존 10파운드에서 12.5파운드로 오른다. 오염 물질 배출이 많은 차량은 도심 진입시 하루 24파운드(약 3만5000원)를 내야 한다.

노후 경유 차량에 훨씬 높은 요금을 물리는 런던 도심의 추자요금표 [김성탁 특파원]

노후 경유 차량에 훨씬 높은 요금을 물리는 런던 도심의 추자요금표 [김성탁 특파원]

 심지어 런던시는 현재 도심에만 적용하는 초저배출구역을 2021년 런던 외곽까지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혼잡통행료는 장애인ㆍ구급 차량 등과 함께 전기차에는 면제된다.

 런던 도심 옥스퍼드거리 인근 도로의 주차공간에는 최대 4시간 동안 주차할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요금표가 붙어 있다. 시간당 4.9파운드(약 7200원)인데, 경유차는 7.35파운드(약 1만1000원)로 비싸다. 특히 2015년 이전 경유차는 50% 할증이 붙어 시간당 1만60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반면 전기차는 10분 가격만 내면 4시간 주차가 가능하다. 4시간 주차시 전기차는 1200원만 내면 되지만, 노후 경유차는 6만4000원이 든다. 노후 차량으로는 아예 도심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정책 때문에 도심 거주 주민 중에선 차를 새로 살 때 전기차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런던 도심 옥스퍼드거리 인근 주차공간에 전기차들이 세워져 있다. 전기차는 10분 비용인 1200원만 내면 4시간 주차가 가능하다. 반면 노후 경유차는 6만4000원을 내야 한다. [김성탁 특파원]

런던 도심 옥스퍼드거리 인근 주차공간에 전기차들이 세워져 있다. 전기차는 10분 비용인 1200원만 내면 4시간 주차가 가능하다. 반면 노후 경유차는 6만4000원을 내야 한다. [김성탁 특파원]

◇지난해부터 경유 택시 면허 발급 중단…전기 블랙캡 보급

 대중교통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작업도 한창이다. 독특한 모양의 블랙캡이 상징인 런던시는 지난해부터 경유 택시에는 면허를 내주지 않는다. 천연가스나 전기를 쓰는 택시로 바꾸면 지원금을 주고, 노후 택시 면허를 반납하면 최대 1만 파운드(약 1470만원)를 지급한다. 신형 전기차 블랙캡도 개발했다. 가격이 6만6000파운드로 경유 택시보다 2만 파운드가량 비싸다. 하지만 정부가 7500파운드 정도를 보조하고,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 결국 이익이라고 택시 운전자들은 설명했다.

경유 택시를 전기 택시로 바꾼 택시운전사 트레버 [김성탁 특파원]

경유 택시를 전기 택시로 바꾼 택시운전사 트레버 [김성탁 특파원]

 지난해 3월 전기차로 바꾼 택시운전사 트레버는 “경유 택시에 비해 유지비가 20%가량 적게 들고 승차감도 훨씬 좋다"며 “전기 배터리가 한 번 충전하면 90㎞를 가기 때문에 영업하기에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충전기를 설치했는데 서너 시간이면 완전히 충전되고, 도심에 있는 충전소에서는 30분이면 충전이 끝나 어려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런던시는 도심과 공기 오염 정도가 높은 일부 지역을 '저공해자동차 구역'으로 지정해 유로6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버스만 다니도록 하고 있다. 2017년 5월 퍼트니 하이스트리트가 처음 지정된 이후 현재 7곳이 있고, 연말까지 12곳을 추가 지정한다. 런던에는 현재 경유와 전기를 동시에 쓰는 하이브리드 버스가 2600대가량인데, 총 버스의 30%에 달한다.

런던의 상징인 블랙캡 택시의 신형 전기차 모델. [김성탁 특파원]

런던의 상징인 블랙캡 택시의 신형 전기차 모델. [김성탁 특파원]

 대중교통 수단을 친환경 차로 바꾸면서 지하철을 이용한 뒤 한 시간 이내에 버스를 타면 요금을 물리지 않는 환승할인제도 도입했다.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하루 대중교통 요금에 상한을 정해 그 이상은 부과하지 않는다.

 런던의 도로는 과거 마차가 다닌 길이 남아 있어 좁다. 그렇다고 가로수가 있는 인도를 없애고 확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모그 대참사 이후인 1955년부터 런던은 그린벨트를 대폭 확장했다. 런던 주변을 도넛처럼 둘러싼 그린벨트가 런던보다 3배 큰 51만6000헥타르에 달한다.

 칸 런던시장은 2050년까지 런던의 50%를 녹지로 덮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1200만 파운드(약 177억원)의 더 푸른 도시 가꾸기 기금을 조성해 나무 심기를 지원 중이다.

런던을 도넛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린벨트. 런던의 3배 규모에 달한다.

런던을 도넛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린벨트. 런던의 3배 규모에 달한다.

 ◇석탄 화력발전소 2025년까지 퇴출…원자력 유지하며 재생에너지 장려

 영국 정부는 장기 에너지 정책을 전환 중이다. 영국에선 1882년 토머스 에디슨이 런던에 홀본 바이덕트 발전소를 열고 세계 최초로 석탄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했다. 석탄이 전력생산량의 30%를 차지하던 영국은 지난 2015년 석탄 화력발전소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스 및 원자력 발전으로 에너지정책을 전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지난해 4월 영국은 산업 혁명 이후 가장 긴 사흘 동안 석탄 연료 없이 전국에 전력을 공급했다. 전기 생산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3%에서 2017년 7%가량으로 급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해 물질을 대량 배출하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닫는 대신 풍력과 바이오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에 예산을 지원한 결과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비율이 2017년 30%까지 올랐다. 원자력은 비중이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소를 닫는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국 환경단체 등은 여전히 화석연료인 천연가스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며 정부에 추가 대책을 요구 중이다.

 영국에선 대학 등 각종 연구기관이 미세먼지가 폐는 물론 혈액으로도 들어가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도로변 오염물질이 폐질환으로 숨진 통학 어린이의 사망 원인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등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조차 없는데도 한국은 석탄 화력발전소를 신설하고, 관련 기술을 동남아로 수출한다. 정부도 원자력 발전 중단 입장을 고수하며 장기적인 에너지 구조 개편 계획 등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중국에 공기 오염을 줄이라는 압박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대책부터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며 "중국 관계자들이 한국 내부가 원인이라고 발뺌할 명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 주택가의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 나무 등이 심어진 공간이 있지만 영국에선 도로를 넓히지 않고 녹지를 우선 보호한다. [김성탁 특파원]

영국 런던 주택가의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 나무 등이 심어진 공간이 있지만 영국에선 도로를 넓히지 않고 녹지를 우선 보호한다. [김성탁 특파원]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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