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요. 초기 노래가 개인의 일기라면, 8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의 일기였다고. 그게 가장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 박은옥(62)은 남편 정태춘(65)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동지로 살아온 사람의 말이니 이보다 더 정확한 평가가 어디 있을까. 정태춘은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박은옥은 79년 ‘회상’으로 데뷔해 그 이듬해 부부가 됐다. 84년부터 듀엣으로 함께 부른 노래들은 무대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 40주년 프로젝트 시작 #새 앨범 ‘사람들 2019’ 내고 전국투어 나서 #전시ㆍ출판ㆍ학술대회 등 1년 내내 이어져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기자간담회에서 정태춘은 “40주년을 맞은 특별한 소회는 없다.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준 분들이 많아 감사할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은옥 역시 오래간만에 선 무대가 낯선 듯 “뒤에서 다른 사람 기자회견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스스로 무대에 오르지 않으니 많은 분이 40주년 공연을 도와주는 걸 보면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음악인생 40년을 기리는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ㆍ어린이 잡지 ‘고래가그랬어’ 김규항 발행인ㆍ명필름 이은 대표가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각계의 참여로 기획됐다. 다음 달 13일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ㆍ부산ㆍ전주 등 15개 도시에서 펼치는 전국 투어 ‘오리배, 날다’를 비롯해 전시 ‘다시, 건너간다’, 정태춘 시집『노독일처』의 복간과 신작 시집 『슬픈 런치』출간 등이 이어진다.
문학평론가 오민석이 쓴 가사 해설집, 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평론, 평론가 박준흠 등 40여명이 참여한 트리뷰트 서적도 나온다.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총괄 감독을 맡아 기획한 사업도 공연ㆍ출판ㆍ전시ㆍ학술대회 등 10여개. 이런 발자취를 담아 내년에는 음악 다큐 ‘노래, 마음이 부르지 목이 부르나’(가제)도 선보인다.
정태춘은 “햇수로 따지면 저는 41년 차"라며 "박은옥씨가 40주년"이라고 했다. “2008년에도 저는 공연을 안 했어요. 2009년 박은옥씨 30주년 공연을 같이했죠. 사실 지난 10여년 동안은 활동한 게 많진 않지만 한번 정리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 농촌 마을에서 살면서 초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만나고, 이후 바이올린으로 가게 되고, 창작하게 되면서 얼떨결에 가수가 됐지만 열정을 다해 뛰어들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진행되는 노래 인생을 살았지만, 나의 존재와 실존적인 고민과 세상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으니까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펴보면 당대에 다른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을 테고.”
다음 달 초에는 40주년 기념 앨범 ‘사람들 2019’도 나온다. “문승현이는 소련으로 가고 거리에는 황사만이~”로 시작하는 6집 수록곡 ‘사람들’(1993)을 2019년 버전으로 바꿨다. 정태춘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죽음들이 있었는지 담기 위해 교통사고ㆍ산업재해 등으로 몇 명이 죽고 하는 가사를 2017년도 자료로 다시 넣었다”고 설명했다. 1999년에 만든 미발표곡 ‘외연도에서’와 올 초 만든 ‘연남, 봄날’ 등 신곡 3곡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가수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딸 정새난슬도 함께 참여했다.
딸이 2013년 결혼해 2년 만에 이혼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은 심경도 노래에 담겼다. 40여년 간 살던 송파를 떠나 지난해 연남동으로 이사한 만큼 새로운 풍경도 담겼다. “지난 몇 년간 부침이 많았던 가족들을 생각하며 썼다고 본인은 굉장히 울컥했던 모양인데 정작 저는 그 감정까지 안 가더라”며 “그래서 그냥 당신이 부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시 노래는 만든 사람이 부르는 게 더 섬세한 것 같아요. 이번엔 내가 정태춘씨를 위해서 공연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80년대 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이들은 ‘아, 대한민국...’(1990)과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등을 사전검열 없이 발표, 오랜 싸움 끝에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정동진/건너간다’(1998)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의 잇단 상업적 실패는 상처로 남은 듯했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았던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역시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아, 대한민국...’은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있었죠. 저 역시 유신 독재 시절을 거쳐 5ㆍ18 광주 항쟁을 겪으면서 깨어나고 변화하여 비로소 시인이 되었으니까요. 나를 깨워준 건 우리 시대인 셈입니다. 많은 분이 변화를 위해 함께 연대했죠. 그때는 그 노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불편합니다. 전혀 안 듣습니다. 개인의 분노만 있으니까요. 그다음 앨범들은 시장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 나의 고민을 담았는데, 그 고민을 읽어주는 피드백이 없었죠. 대중예술가라면 대중의 생각이나 기호를 읽어야 하는데 저는 점점 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갔죠. 그러면서 점점 대중과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되고.”(정태춘)
정태춘이 ‘붓글’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는 대신 자유롭게 글씨를 쓰고 가사를 담았다. “제게는 노래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었는데 그 그릇에 계속 담기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거죠. 노래를 부를 때보다는 더 협소한 대중과 소통할 수도 있겠지만 붓글로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앨범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통로가 새로 생긴 셈이니까요.”(정태춘)
이 분주한 와중에도 이들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정태춘은 “주위에서 이제 네 번째 깃발을 들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한다”며 ‘시장 밖 예술’을 언급했다. 80년대 전교조 지지 순회공연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펼치며 높이 든 첫 번째 깃발을 시작으로 90년대 사전심의제도 철폐, 2000년대 대추리 평화예술 운동 등 누구보다 삶 가까이 아니 한복판에서 예술활동을 펼쳐온 그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다.
“지금은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하고 있습니다. 시장성을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은 사장되어 가고 있죠. 최첨단 산업 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는 시장 밖에서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 안에서 조금씩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정태춘)
“방탄소년단을 만든 빅히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자기 안의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는 걸 보면서 참 의외다 싶으면서도 그것이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동력이 되는구나 하며 정태춘씨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정태춘씨처럼 재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소리로 표현만 했지 글을 쓰고 만들어보지 못해서 참 부러웠거든요.”(박은옥)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