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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공범' 권순일 빼고 '김경수 구속' 성창호는 기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원도서관 이전 개관식에서 권순일 대법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 대법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서 기소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원도서관 이전 개관식에서 권순일 대법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 대법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서 기소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0명이 5일 기소되자 법조계에서는 예상외의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檢, 현직 8명 포함 전·현직 법관 10명 기소 #'양승태 공범' 적시된 권순일 대법관 빠져 #김경수 구속 성창호 부장판사 '영장유출'로 기소 #법조계 "대마불사도 아니고 대법관이라 빠졌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권순일 현 대법관과 차한성 전 대법관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시킨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분과 같은 사건의 외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 기준으로 혐의의 경중을 따져보면 권 대법관과 차 전 대법관의 혐의가 다른 법관에 비해 가볍다고 보긴 어렵다"며 "검찰의 선별적 공소가 바둑 용어인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공소장에 지목됐던 차한성(사진) 전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사진은 차 전 대법관이 지난 2014년 3월 3일 오전 서울 서초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는 모습. [뉴스1]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공소장에 지목됐던 차한성(사진) 전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사진은 차 전 대법관이 지난 2014년 3월 3일 오전 서울 서초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는 모습. [뉴스1]

검찰은 이날 현직 법관 8명을 포함해 총 10명의 전·현직 법관을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임성근·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기소된 법관 대부분은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출신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로는 성창호·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만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재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날 기소된 법관까지 더해 이번 수사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은 14명이다. 검찰은 이날 기소 대상자를 포함한 법관 66명에 대해 대법원에 비위 통보를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찰에서 통보받은 내용을 살펴본 뒤 법관 추가 징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언이나 사실 관계가 드러날 경우 추가 기소 가능성도 있다"며 "아직 수사가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이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할 법관들에게 수사 협조를 구하는 '경고성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0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0명

양승태 대법원에서 법원행정처 차장과 처장을 지낸 권순일 대법관과 차한성 전 대법관은 법관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하고 인사 보복을 가했다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공범으로 지목됐었다.

차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재판 개입 혐의도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두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에 재직할 당시 실제 인사 보복이 이뤄지거나 강제징용 재판 지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두 사람을 공범으로 적시한 뒤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은 자기 모순"이라 지적했다. 또다른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기소된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은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한 건 배당에 개입해 기소가 됐다"며 "심 전 법원장의 혐의가 두 대법관의 혐의보다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최대한 절제해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면서도 "증거와 공소 유지 가능성 등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말했다.

법관사찰과 재판개입 등 양승태 사법부 시절 여러 의혹에 연루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법관사찰과 재판개입 등 양승태 사법부 시절 여러 의혹에 연루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대(大)자가 적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 시항이 포함된 3권의 업무수첩을 검찰에 제출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헌법재판소의 평의 결과 등을 빼돌리고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담당 재판장의 판결 내용을 수정토록 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와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 후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개입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도 모두 재판개입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로 근무 당시 구속영장 관련 정보를 상부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됐다. 성 부장판사는 김 지사 판결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입건된 상태였다.

성 부장판사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가 법관 비리 수사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시에 따라 조의연 당시 영장전담부장판사와 함께 법관 및 법관 가족과 관련한 영장 청구서와 검찰의 수사 기록 등을 빼돌려 상부에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는 재판부 로비 명목으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약 100억여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0월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 검사(사진 오른쪽)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 검사(사진 오른쪽)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후 법원행정처가 "법관 가족과 관련한 계좌 추적 영장을 더 엄격히 심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세 법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헌재나 다른 지방법원에서 수사나 재판 관련 기밀을 유출한 법관들은 기소하지 않았다. 형평성 논란이 있다는 지적에 검찰 관계자는 "세 사람의 경우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범죄를 공모한 점에서 다른 사건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에서 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원의 개입을 차단하고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성 부장판사 등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수사 결과를 두고 판사들 사이에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얼마나 막강한 권한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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