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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성평등 시각으로 보니 일상부터 역사적 사건까지 새롭게 느꼈죠

중앙일보

입력

박수연 학생모델과 노효은 학생기자, 조화순 사서, 김희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 대리(왼쪽부터)가 성평등도서관 '여기' 시설의 정중앙에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박수연 학생모델과 노효은 학생기자, 조화순 사서, 김희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 대리(왼쪽부터)가 성평등도서관 '여기' 시설의 정중앙에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오는 3월 8일은 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에요. 1975년 유엔(UN·United Nations)이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매년 3월 8일을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죠. 그 유래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현장에서 하루 최대 14시간씩 일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핍박받았죠. 이에 1만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미국 뉴욕 럿거스 광장에 모여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큰 시위를 벌였죠. 이날이 바로 3월 8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985년 이후 매년 여성의 날을 기념해 '한국여성대회' 등이 열리죠. 이런 자주 여성 역사 관련 자료를 살피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나섰습니다. 사회 현상에 관심 많은 노효은 학생기자와 박수연 학생모델이 상설 전시, 온라인 아카이브(www.genderarchive.or.kr) 등을 갖춘 성평등도서관 '여기'에 방문한 거죠. 노효은 학생기자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공부해왔어요.

성평등도서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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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feminism), 우리말로는 여성주의라고 해요. 페미니즘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1인 가족, 자녀가 없는 가족, 3대 이상이 모여 사는 대가족, 이성애 커플이 아닌 동성애자 가족 등 여러 형태가 있듯이, 페미니즘 이론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최근 유엔 공식 기구 등에서는 페미니즘을 복수형(feminism/s)으로 표현하죠. 그렇다면 젠더(gender)는 뭘까요.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다르게 태어나죠. 그런데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성향을 갖고, 다르게 대우받는 건 아니에요. 사회적 규범·문화가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들었죠. 남자는 '남자답게' 길러지고, 여자는 '여자답게' 길러지면서 서로 달라진 사회적 성별의 차이를 젠더라고 합니다. 페미니즘은 사회현상을 파악하는 데 젠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공부하는 학문이기도 하죠. 성평등도서관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2015년 7월에 기증자료로 개관, 2019년 2월 현재 1만3000권의 여성단체와 민간 활동 자료집, 서울시 정책자료집, 단행본, 정기간행물, 연구보고서, 포스터, 기념품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도서관과 다른 점은 포스터·기념품 등도 모두 소중하게 저장한다는 거예요.

박수연(왼쪽) 학생모델·노효은 학생기자가 조화순 사서에게 성평등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그렇다'였다.

박수연(왼쪽) 학생모델·노효은 학생기자가 조화순 사서에게 성평등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그렇다'였다.

기자단은 조화순 사서 선생님을 따라 '성평등으로 다시 쓰는 역사', '사건기록으로 보는 성평등', '성평등 도서관 갤러리',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코너를 순서대로 돌아봤습니다. 이 밖에도 기증 자료 전시실, 도서관 역할을 하는 '서울의 성평등 기억을 찾아주세요', 여성 운동가를 발굴한 결과를 알리는 '영원한 현역, 박영숙' 코너도 있죠. 자료 이용, 교육 참여, 전시 관람 등이 가능해 2019년 2월 기준 도서관 방문자는 누적 약 2만9000명에 달합니다. 또, 90여 개 국내외 여성단체·유관기관과 자료를 공유하고 개인 기증자 110여 명에게 자료를 받아 성평등 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죠. '성평등으로 다시 쓰는 역사' 코너에서는 근현대 주요 여성운동과 정책 흐름을 성평등의 관점으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 여성정책 및 운동의 주요 장면들을 시대순으로 개괄하여 재해석한 성평등 역사를 공부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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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기록으로 보는 성평등' 코너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침묵의 역사를 깬 반(反) 성폭력 운동을 다뤄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1993),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2000) 관련 기증 자료의 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원본은 소중하게 따로 보관하고 있죠. "사건 선정 기준이 뭔가요?" 노효은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여기 있는 사건들은 여성운동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 밖에도 중요한 게 많지만 우리 도서관에 기증된 자료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여성운동가 권양숙이 젊은 시절 겪었던 일이에요. 또,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은 국내 최초로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수와 조교 혹은 학생 간 상하관계서 발생하는 성희롱 등 사건에 대해 쉬쉬하는 게 대세였는데,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인식이 반전되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야기는 당연히 뺄 수 없는 큰일이고요."

조화순(왼쪽) 사서가 학생기자단에게 '성평등도서관 갤러리'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기자들은 파란색 배경에 있는 소년과 분홍색 배경에 있는 소녀 그림의 문제가 뭔지 단번에 맞혔다.

조화순(왼쪽) 사서가 학생기자단에게 '성평등도서관 갤러리'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기자들은 파란색 배경에 있는 소년과 분홍색 배경에 있는 소녀 그림의 문제가 뭔지 단번에 맞혔다.

'성평등도서관 갤러리'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여성가족재단이 협력해 마련한 전시가 있어요. 여성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여성의 시각으로 시대·사회를 표현한 작품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성 의식·역할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전시마다 정해진 기간은 없고 프로젝트성으로 기획·진행해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세마 컬렉션 라운지의 다섯 번째 전시는 백지순·윤정미·육영심·주영덕 작가의 사진작품을 선보이죠. 이날 학생기자들은 윤정미 작가의 '핑크&블루 프로젝트'를 특히 관심 있게 봤어요. 작가는 여자 어린이와 방 안 가득 채운 분홍색 사물(인형·액세서리 등), 남자 어린이와 파란색 사물(장난감·스포츠용품 등)을 촬영했죠. 여아들은 분홍색 물건에, 남아들은 파란색 물건에 놓인 그림을 통해 작가는 '이게 얼마나 이상한지' 관객 스스로 느끼게 하죠.

박수연(왼쪽) 학생모델·노효은 학생기자가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코너 벽면에 다른 방문객들이 남긴 문구도 확인하고 자신들의 의견도 적어 붙였다.

박수연(왼쪽) 학생모델·노효은 학생기자가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코너 벽면에 다른 방문객들이 남긴 문구도 확인하고 자신들의 의견도 적어 붙였다.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코너에는 여성운동 현장서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글귀 등도 비닐로 포장해 관리합니다. 이는 '여성의 기록, 시민과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일부 공개돼 있죠. "이 모든 게 역사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손으로 적은 여성운동에의 희망을 남긴 거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조화순 사서 선생님이 학생기자들에게 설명했어요. 포스트잇 전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6년 약속한 '강남역 인근 여성 살해사건 추모 포스트잇 기록화' 일환이죠.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인근 여성 살해사건’ 관련 전국 시민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 3만5350건과 관련 미디어 자료, 시민 활동 자료 등 198일간(2016년 5월 17일~11월 30일)의 기록이에요. 노효은 학생기자, 박수연 학생모델은 선생님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앞서서 포스트잇과 펜을 들었어요. "세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일부 생각이 문제니까요."(노효은) "아무 이유 없이 차별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해요. 기분이 나쁘거든요. 성평등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바꿔야 합니다."(박수연)

성평등도서관 '여기' 이용안내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을 둘러본 노효은(왼쪽) 학생기자·박수연 학생모델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포스트잇에 성평등도서관을 둘러본 감회 등을 담았다.

'기억존: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을 둘러본 노효은(왼쪽) 학생기자·박수연 학생모델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포스트잇에 성평등도서관을 둘러본 감회 등을 담았다.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54길 18(대방동)
이용시간: 화~토요일 오전 9시~오후 12시, 오후 1~8시
휴관일: 일·월요일·법정공휴일, 국가가 정한 임시휴일 등

학생기자 취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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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효은(파주 와석초 6) 학생기자
성평등 관련 시설은 청소년들에게 필요해요. 청소년들이 성평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성평등이 올바르게 실행되지 못하면 곤란한 일이 일어납니다. 직접 가보니 더 느꼈죠.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된 장소예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단어·말이 틀렸음을 깨닫자 그동안 내뱉었던 무수한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넌 남자(여자)가 무슨 그런 일을 해?" "쟤는 여자(남자)잖아요" 등의 말이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평등도서관 '여기'의 사서 선생님께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 "내가 누군가를 성별을 이유로 차별했구나" 하고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사람들이 깨닫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가혹한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주변인과 이곳을 다시 와서 또 뭔가를 새로 배우는 것도 좋을 거예요. 취재 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성평등도서관이 계속 안전하게 관리된다면 청소년들에게 성평등을 인식키기에도 좋고, 성차별 횟수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곳의 성평등 관련 자료를 학교 수업 등에서 보여주고, 인식시키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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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서울 우면초 5) 학생모델
취재 전에는 성평등 주제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여성단체, 성평등 언어, 여성운동….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죠. 하지만 성평등도서관 와 보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성희롱 용어가 탄생한 배경 등에 대해 들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내했어야 한다는 얘기에 굉장히 속상했어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너무 많은 고통을 받으신 걸 보고 마음이 아팠고요.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했던 사건도 기분 나빴죠. 그래서 효은 언니랑 저는 자발적으로 포스트잇에 글귀를 적어 붙였죠. 제가 특히 공감했던 건 그림 전시예요.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잖아요.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따르고요. 그걸 지적해 비꼰 전시를 보니 마음이 탁 트였죠. 이제는 남녀를 가르지 말고 일도 고르게 시키고, 성평등 언어도 사용했으면 해요.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성평등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차별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익숙한 단어로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유모차 등이 있죠. 친가는 할머니·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외가는 '바깥'을 뜻하는 '외'를 붙이기 때문입니다. 유모차는 엄마를 뜻하는 '모'가 들어가 있어 엄마만 끄는 것이라 여길 수 있죠. 사소한 단어라도 신경 써서 고치면 성평등이 실현될 거라 믿어요.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노효은(파주 와석초 6) 학생기자·박수연(서울 우면초 5) 학생모델, 참고 도서=『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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