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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14화. 아서왕의 전설

중앙일보

입력

완벽한 왕이기보다 진정 따르고 싶은 영웅으로

최근 인기를 끈 영화 ‘아쿠아맨’처럼 아서왕 전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많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인기를 끈 영화 ‘아쿠아맨’처럼 아서왕 전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많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오랜 옛날, 브리튼 섬에 한 자루의 칼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바위에 꽂혀 있던 검. 그 검에는 이를 바위에서 뽑아낸 자가 브리튼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담겨 있었죠.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 검을 뽑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자도 검의 마법 앞에서는 무력했죠. 그렇게 검의 전설이 잊혀갈 무렵, 한 소년이 우연히 검에 손을 대었고 바위에서 뽑아냈습니다. 사람들은 전설을 떠올렸고 소년을 왕으로 받들었습니다. 아서왕. 브리튼의 영웅왕이 태어난 것이죠.

수많은 용사를 원탁의 기사로 맞아들인 아서왕은 사악한 침략자를 물리치고, 세상을 위해 싸웠습니다. 많은 싸움 끝에 아서왕은 결국 어둠으로부터 승리하고 떠나갔지만, 사람들은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그 위대한 영웅왕이 돌아오리라 믿었다고 해요. 아서왕은 서양의 이야기 속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입니다. 5세기 후반에서부터 6세기 초반까지 영국을 다스렸다는 그는 로마 제국이 쇠퇴해 물러나고 공백 상태에 가까웠던 브리튼 섬에 밀려온 침략자들에 맞서 물리쳤다고 하죠. 영국의 역사 속에서 그가 정말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중세의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 속에서 그는 위대한 군주이자 훌륭한 기사의 귀감으로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사악한 침략자에 맞서 승리한 영웅왕. 원탁의 기사와 함께 싸움에 나선 위대한 기사. 카멜롯 성을 거점으로 강력한 마법사인 멀린의 도움으로 브리튼을 번성시킨 통치자. 그리고 예수가 남긴 성배를 찾고자 했던 기독교의 수호자. 아서왕과 관련한 이야기는 중세를 거치며 끝없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창작 작품이 탄생했어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토머스 불핀치의 『아서왕 이야기』를 비롯해 아서왕이나 원탁의 기사를 주역으로 한 소설·영화·만화·게임 등이 등장했죠. 21세기만 해도 아서왕을 주역으로 한 영화가 몇 편이나 만들어졌고, ‘아쿠아맨’처럼 아서왕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까지 따지면 셀 수 없을 정도예요.

아서왕에 대한 여러 작품은 제각기 독자적인 형태로 아서왕 이야기를 해석합니다. 가령 최근 모바일에서 인기 있는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원형인 ‘페이트’ 시리즈에서는 ‘아르토리아 펜드래건’이란 이름의 남장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아서왕의 이야기는 너무도 다양한 형태가 있어서 그중 어느 것이 원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아서왕이 바위에서 뽑은 칼도 한 가지가 아니죠. 여러 이야기에서 아서왕은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고 왕이 됩니다.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에서도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은 미니언이 왕이 되는 장면이 등장하죠. 하지만 웨일스 전설에서 바위에 박힌 검은 엑스칼리버가 아닙니다. 아서는 바위에서 칼을 뽑아 왕이 되었지만, 그 칼은 전투 중에 부러져 버렸고 아서왕이 마법사 멀린에게 부탁하여 호수의 요정으로부터 엑스칼리버를 받았다고 하죠.

엑스칼리버뿐 아닙니다. 마법사 멀린이나, 원탁의 기사 중 가장 유명한 랜슬롯, 아서왕의 조카이자 최고의 기사였던 가웨인, 랜슬롯의 아들로서 성배를 찾은 갤러해드에 이르기까지. 아서왕의 이야기는 제각기 다양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죠. 원탁의 기사가 몇 명인지도 이야기마다 달라서, 13명에서 300명까지 나와요. 아서왕 이야기가 다양한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고, 중세 유럽으로 보면 변두리에 불과했던 영국의 왕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서라는 인물이 그만큼 친숙하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아서왕은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지만, 전설 속의 그는 완벽한 왕도, 무적의 기사도 아닙니다. 침략자를 물리치고 브리튼을 구했지만, 부하와 다툼이 붙었고 누나와 불륜을 저질러 태어난 자식(조카)과 내전을 벌인 끝에 숨을 거두기도 했으니까요. 그 밖에도 아서왕은 영웅이라는 말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무수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같은 인간적인 면이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완벽한 인물은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죠. 그보다는 훌륭한 업적과 함께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을 때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서 사랑하게 되죠.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아서왕이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약해진 로마가 물러나고 색슨족의 침공에 처한 브리튼인들이 바랬던 영웅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전설이라고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아서의 모델이 된 인물이 있었지만, 왕이 아니라 장군(부족장이나 로마 군단장)이었다고도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엔 ‘킹 아서’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죠. 하지만 역사의 진실이 어떻든, 앞으로도 사람들은 아서왕의 전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길 것입니다. 전설적인 왕 아서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인간이니까요.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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