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앓이」하는 광주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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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종국 <정치부 기자>】이철규 군 사건 진상 조사 과정을 보면 오늘의 광주문제를 상징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광주는 공공 기관의 발표에 철저히 부정적이다. 이군 사인에 대해서도 「고문 살인」이라는 예단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문살인을 증명하는데 불리한 증언을 할 분위기가 아닌것 같다.
국정 조사에서도 그러한 분위기에 대한 고려가 의원들의 판단보다 중요시되고 추가 부검까지 하게 됐다.
19일에는 광주교대생이 집앞에서 목 맨 시체로 발견되자 즉시 또 의문사라는 대자보가 시내 곳곳에 나 붙었다.·
광주 시민들의 표정은 일상의 평범한 그것이다. 어느 도시거리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낯익은 표정들이다.
그러나 그 뒤엔 쓰라린 속앓이가 감춰져 있는 것 같다.
광주에서 40여년을 살아온 한 토박이 주재 기자는 『광주가 이래선 안 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폭력 시위가 있어도 공권력은 방치 하다시피 하고 있다.
시위하다 좇긴 여학생을 숨겨주지 않은 한 대형 슈퍼마킷은 물건이 모두 부서진 채 문을 닫아야 했다. 사과 광고까지 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들을 제지할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재야 단체는 60여개에 이르고 항상 강성 류가 주도하고있다.
전국의「열사」들은 모두 광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광주 분위기를 하나로 생각치 말라』는 게 일반시민의 생각인 듯 하다.
광주를 보는 외부의 시선도 이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지레 광주는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 역시 자극하지 않으려 인위적으로 조심하는 눈치다. ·
정치인도 아예 포기하고 체념해 버리거나 발목이 잡혀 끌려가고 있는 듯 하다.
언제까지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누구도 이러한 분위기를 깨뜨릴 용기를 못 내고 있다.
이같은 「광주 현상」을 우려하는 시민들은 『6공 출범 1년이 지나도록 광주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한 게 뭐냐』며 그 원인이 5공 매듭 작업 부진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굳이 그러한 지적이 없더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지겹도록 줄다리기만 하고있는 정치권이 가장 큰 책임을 면할수 없다. 또한 광주 스스로도 과도한 감정의 증폭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광주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광주를 계속 이방의 도시로 남겨둘 순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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