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 정치」에 기대한다|여야는 빨리 정국 정상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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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 동안 암중모색을 보이던 정치권이 노·김영삼 회담과 곧 있을 3야당 대표 회담 등으로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다.
21일의 노·김 회담은 표면상 국내 정치 문제에 관해서는 뚜렷한 합의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통일·북방 문제와 경제 안정 등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다짐하고 현 시점에서의 여야 협력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 함으로써 정국에 뭔가 진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게 했다.
노·김 회담에서 특히 그럴 듯하게 들린 말은 「큰 틀 정치」가 필요하다는 대목이었다.
국내 정치에서 작은 대결적 요소를 하루 빨리 매듭짓고 정국을 안정시켜 변화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큰 틀」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두 지도자의 공동 인식은 오늘날 우리 국민이 바라는 정치 방향의 정곡을 찔렸다는 생각이다. 사실 지난 1년간 여야는 「작은 대결적 요소」에 매달린 나머지 변화하는 세계는커녕 국내 변화에도 제대로 대응 못하고 소모적인 정쟁만 거듭함으로써 국민을 실망시켰다.
두 지도자가 말한 「큰틀 정치」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이런 공동인식이 앞으로 정국 운영의 바탕이 돼야 할 것으로 믿으며, 우선 노·김 회담에 이어 열릴 3야당 대표회담에서부터 이런 정신이 가시화하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정국상황은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할 일의 가닥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중간 평가를 둘러싼 혼선과 갈등, 상대를 의심하는 밀약설의 빈발, 서로 질투하고 헐뜯는 저수준의 경쟁 의식 등이 최근 정국 분위기를 지배해왔다.
그 중에서도 야당간의 시샘과 저질 경쟁 의식은 많은 국민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갑이 주도하면 을이 배 아파하고,이 당이 뭔가 했다 싶으면 저 당이 못 참아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키곤 한다. 명색이 국민을 지도하고 집권을 노린다는 공당이 어쩌면 이런 유치한 작태를 보일 수 있는가.
또 당장 코 앞의 해묵은 문제들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내각제 개헌이니, 정계 개편이니, 선거제도 개편이니 하는 막연한 말들이 정치권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현상을 봐도 정국 분위기가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장 5공 청산은 물론 교원 노조 파동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도 교육 관계법 개정에는 손을 못쓰고 있고 보안법 개정도 여태 못한 실정에서 언제 어떻게 개헌을 하고 정계를 개편한다는 것인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현재의 정계 구조로는 당면 현안들을 풀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구조 개편이 모색되는 사정은 짐작되지만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할 일」 의 순서를 잡아가는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야는 우선 정국 분위기를 정상화하고 다시 대화와 타협이란 일상적인 정치를 회복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먼저 임시 국회의 조속한 소집에 합의하고 「큰틀 정치」로 전·최씨의 증언 등 5공 청산을 완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각종 입법 작업을 서두르고 광주 보상 문제, 당면한 경제난국의 극복을 위한 중지의 규합 등에 여야가 함께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원 노조 문제와 평양 축전 등에 대해서도 여야의 일치된 문제 인식과 설득이 시급하다.
우리는 여야가 이런 기조에서 정국을 끌어가기를 당부하면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노·김대중, 노·김종필 회담도 잇따라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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