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9칸 대저택 모습 사라진 '독립운동 성지' 임청각 복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전경.  [연합뉴스]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전경. [연합뉴스]

27일 오전 경북 안동시 법흥면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에 전투복을 입은 군 장병 60여 명이 줄지어 들어섰다. 20대 초·중반 앳된 얼굴의 병사들부터 중년으로 접어든 영관급 지휘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생가 #일제강점기 철길내며 99칸 대저택 반토막내 #올해부터 2025년까지 280억원 투입해 복원

이들은 육군 제50보병사단 안동대대 소속 장병들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 장병들은 문화해설사의 임청각 소개를 듣고 고택 안팎에 설치된 안내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임청각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50사단 안동대대 관계자는 "3·1절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27일 경북 안동시 임청각을 찾은 육군 제50보병사단 안동대대 장병들이 임청각 내 군자정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27일 경북 안동시 임청각을 찾은 육군 제50보병사단 안동대대 장병들이 임청각 내 군자정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대통령 두 차례나 소개한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 

임청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첫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한 곳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 방송에서도 재차 임청각을 언급했다. 육군 장병들이 단체로 이곳을 방문하고, 대통령이 취임 후 두 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뭘까.

임청각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고성 이씨 종택인 이곳에서 독립유공자만 무려 11명이 배출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자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27일 경북 안동시 임청각 입구. '국무령 이상룡 생가'라고 적힌 문패가 붙어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27일 경북 안동시 임청각 입구. '국무령 이상룡 생가'라고 적힌 문패가 붙어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임청각은 요즘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문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임청각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27일 오전에도 임청각은 자녀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가족들과 관광버스를 빌려 단체로 방문한 노인들, 카메라를 목에 걸고 고택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 청년들로 가득했다.

경북 포항에서 온 이지연(26·여)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일제 치하 민초들이 겪었던 고통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임청각을 실제로 보고 싶어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고 말했다. 임청각에 견학 온 50사단 안동대대 관계자는 "3·1절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이곳을 찾았다"고 전했다.

정부 인사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20일 임청각을 찾아 "임청각을 잘 지켜준 후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26일엔 임종식 경북도교육감이 임청각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고 '경북인의 독립운동 정신 계승 기념식'을 열었다. 28일엔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문한다.

26일 오전 경북 안동시 법흥동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에서 열린 '경북인의 독립운동 정신 계승 기념식' 행사장 뒤편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뉴스1]

26일 오전 경북 안동시 법흥동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에서 열린 '경북인의 독립운동 정신 계승 기념식' 행사장 뒤편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뉴스1]

임청각 할퀴고 지나가는 철길…99칸 저택 반 토막 내 

이처럼 관심을 끄는 임청각은 안타깝게도 예전 '99칸 대저택' 때의 모습이 아니다. 일제가 42년 임청각 앞으로 철길을 놔 반토막이 나면서 60여 칸만 남았다. 임청각에서 만난 강명구 문화해설사는 "철길이 나기 전엔 임청각 입구 쪽에 행랑채와 마굿간 등이 있었다"며 "일제가 백성들의 반대가 심해 임청각 전체를 철거하진 못했지만 갖은 핑계를 대면서 임청각을 바로 앞으로 철길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청각이 지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인 1519년이다.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 이씨 이명(李洺)이 지었다. 영남산을 등지고 낙동강이 앞으로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경북 안동시 법흥동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앞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뉴스1]

경북 안동시 법흥동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앞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뉴스1]

경북 안동시 임청각으로 가기 위해선 임청각 앞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교 아래를 지나야 한다. 안동=김정석기자

경북 안동시 임청각으로 가기 위해선 임청각 앞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교 아래를 지나야 한다. 안동=김정석기자

이 선생의 집안에선 독립유공자가 11명 나왔다. 이 선생의 동생 상동(1865~1951·애족장)·봉희(1868~1937·독립장), 아들 준형(1875~1942·애국장), 조카 형국(1883~1931·애족장)·운형(1892~1972·애족장)·광민(1895~1945·독립장), 손자 병화(1906~52·독립장), 손자며느리 허은(1907~97·애족장), 당숙 이승화(1876~1937·애족장) 등 10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지난 26일 이 선생의 부인 김우락(1854~1933) 여사도 독립유공자(애족장)에 이름을 더했다.

석주 이상룡 선생. [중앙포토]

석주 이상룡 선생. [중앙포토]

이 선생의 업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도 손꼽힐 정도로 눈부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처남 김대락(1845~1914)에게 "왜놈들의 사변을 듣고부터 가슴속에 피가 끓어 왕왕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베개에 눈물 자국을 남기곤 한다"는 편지를 쓴 이상룡 선생은 이듬해부터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엔 간도·만주 지방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임시정부에서 서로군정서를 통솔하며 일제와 맞서 싸웠다. 32년 만주에서 순국하며 남긴 유언도 "독립이 되기 전엔 나의 시신을 고국에 가져가지 말라"였다.

"3·1절 100주년 되는 올해를 임청각 복원 원년으로"

김희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를 상당수 배출한 이상룡 선생 집안의 역사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 50년사를 살펴볼 수 있다"며 "임청각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 측면에서도 상당히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임청각 복원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임청각 복원사업은 2025년까지 7년간 총 사업비 280억원을 투입해 임청각 일대를 일제 강점기 이전 모습으로 복원·정비하는 사업이다. 고증이 가능한 자료를 근거로 관계 전문가들이 수 차례 논의·검토해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임청각을 방문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사진 앞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임청각을 방문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사진 앞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를 독립운동의 원년으로 삼아 이곳을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문화유산의 골기(骨氣)가 올곧이 지켜지고 보존하도록 하는 것이 독립운동을 한 이 분들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