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8일, 장제스(蔣介石)는 중국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후퇴한다. 그는 국민당 군을 퇴각시키기 전, 금(金)과 문화재를 먼저 옮기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그가 가져온 문화재가 전시 중이다. 다 보려면 10년이 넘게 걸릴 만큼 방대한 양의 보물들. 그가 특히 애지중지했다는 보물들은 뭘까?
《당인궁악도(唐人宫乐图)》
사극의 별미는 '궁중 암투'씬이다. 정궁과 후궁, 후궁과 후궁 사이엔 항상 스파크가 튄다. 그러나 이 그림 속의 후궁들은 꽤나 평화롭다. 그림 속에는 후궁과 비빈 12명이 네모난 탁자에 둘러 앉아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다. 언뜻보기에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그림을 장제스가 사수한 이유는 뭘까?
우선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생활 용품은 모두 만당(晩唐) 시기의 것으로 이들은 탁자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흥을 돋우고 있다. 왼쪽 가운데 앉은 여인만이 홀로 봉관(鳳冠)을 쓴 채 엄숙한 모습인데, 황후나 귀비 반열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을 확대해보자. 그림 위쪽 중앙에 앉은 4명의 후궁들은 각각 필률, 생, 고쟁, 비파 등 중국 고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왼쪽 옆에 서있는 두 명의 시녀 중 한 명은 옆에서 박자를 맞추기 위해 아판(牙板)을 쳐주고 있으며, 나머지 인물들은 찻사발을 들어 차를 마시고 있다.
장제스가 왜 이렇게 '당인궁악도'를 아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 당대 생활사와 한가롭게 풍류를 즐기는 아름다운 광경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계산행려도(溪山行旅图)》
북송의 화가 범관의 작품으로 알려진 계산행려도는 장제스뿐 아니라 많은 수집가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현재 진품은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있다. 계산행려도의 가장 큰 묘미는 정지된 화면임에도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옅은 정교한 구도와 산천의 흐르는 물, 높은 산의 바위가 입체적으로 묘사돼있다. 범관은 특히 붓끝을 정교하게 밀집시킨 우점준 기법으로 바위가 아닌 황토 절벽을 그렸다. 이 때문에 그림이지만 사진같은 생생함도 느껴진다.
우점준 기법 외에도 그림 속 오른쪽 한 켠에 나귀와 행객이 매우 작게 묘사돼 있다. 심지어 그 얼굴이나 차림새, 소품을 아주 상세히 그렸다. 당시 범관을 비롯해 북송시대 산수 화가들은 화폭에 사람을 꼭 담았다. 이유는 산과 계곡을 즐기는 사람, 즉 ‘계산행려’가 없으면 광활한 자연 역시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묘사된 인물을 통해 이 산세가 얼마나 웅장한 지도 실감할 수 있다.
《조춘도(早春图)》
조춘도는 북송의 대화가 곽희(郭熙)의 대표작이다. 겨울이 간 자리에 봄이 온 풍경을 담았다. 땅은 다시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녹고 있으며, 산 사이엔 엹은 안개가 피어난다.
멀리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웅장하고, 가까운 곳엔 언덕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샘물은 강 골짜기로 모여 든다. 산벼랑과 나무 사이로 누각도 보인다. 물가와 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덕에 대자연에 한층 생기가 돈다.
산도 있고 물도 있고, 바위도 나무도 있다. 그리고 이 대자연과 어우러진 사람이 있다. 조춘도는 그야말로 인간 세상의 천국, 세상의 도원을 담아냈다.
《산자극작도(山鹧棘雀图)》
<산자극작도>는 북송대(北宋代) 화조화의 대가 황전(黄筌)의 아들 황거채(黄居寀)가 그린 명작이다. 그림 속의 경치와 동물은 제각기 동적인 모습과 정적인 모습을 고루 갖추고 있다.
산 꿩이 개울물을 마시려 바위 위로 사뿐히 뛰어올라 목을 내미는 모습이 생생하며, 참새가 날아갈 지, 울 지, 1초 뒤를 알 수 없는 모습에서 동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가느다란 대나무과 고사리가 자연스레 어우러졌으며 이리저리 흩어진 자태가 마치 바람이 계속 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래쪽의 큰 바위 위에 안착한 산 꿩의 몸은 부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거의 전체 화폭을 가로지른다. 그림의 중심이 화폭의 가운데에 위치했는데, 이는 북송 산수화 중 축선(轴线)의 구도 방식이다.
황거채가 활동할 당시는 무엇보다 '사생'을 중시하는 시대였다. 하여, 그 시대 작품을 살펴보면 새의 관찰과 묘사가 보다 상세하고 생생하며 동식물의 생태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이 드러난다. <산자극작도>는 그 중에서도, 화조화의 빛나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쌍희도(双喜图)》
쌍희도는 북송화가 최백의 인생작이다. 그림에는 두 마리의 산 까치가 산토끼에게 경고하는 듯 소리 내는 모습이 묘사돼있다. 산 까치는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어, 자신들의 공간에 들어온 산토끼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산토끼는 산 까치에게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의 호응의 관계는 'S'자형의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나무의 가지와 대나무, 풀이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기울어지는 모습은 발랄하고 생동감이 있다.<쌍희도>는 단순하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줄거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또한 강약을 잘 조절해 각각의 다른 질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색채가 자연스럽고 엹음에도 경치가 깊고 그윽하다.
차이나랩 임서영